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복잡한 현안을 떠나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몇 해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해외도시개발센터가 추진한 해외법제 지원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의 도시계획제도를 토대로 해 베트남 정부에 도시정비사업을 제안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베트남어는 모르지만, 연구를 위해 베트남법을 유심히 보다 보면 ‘의외’의 친숙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Quy hoach đo thj, 성조 없이 읽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대충 ‘퀴화이 또티’정도로 들렸습니다. 도시계획(urban plan)이라는 의미입니다. ‘퀴화이’는 ‘계획’, ‘또티’는 도시’로 모두 한자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우리 모두 유교문화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베트남은 과거 한자에 근간을 둔 쯔놈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라틴어 로마자에 기초해 말을 표시했고, 베트남어의 기초가 됐습니다. 그래서 알파벳이 사용되고 발음은 익숙하지 않지만, 음미하다가 보면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좀 더 보면, Quy hoach chung, ‘퀴화이 충’ 정도로 들리는데, 어원은 ‘계획 종’으로 우리의 종합계획을 의미합니다. 정부의 임무는 Nhiem vu(니엠 부)로, 설계에서 도안은 Do an(또 안)으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것도 많습니다. 우리 법은 시행령에 위임할 때, 구체적으로 위임 범위를 표시하고 이것이 잘못되면 효력이 상실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베트남법은 그와 같은 구체적인 위임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법제도의 발전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프랑스는 베트남을 점령했었습니다. 위임이 명확하지 않는 것은 프랑스법의 전통과 유사합니다. 나폴레옹 이래로 프랑스는 행정이 강했기 때문에 의회가 정하지 않는 영역에서 정부는 독자적으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흔적이 베트남법에도 남아있는 것입니다.

더 있습니다. 베트남 공무원에게 법률 제공을 요청하면 번호가 찍힌 문서를 가져옵니다. 가령, 베트남 도시계획법은 ‘No. 30/2009/QH12’입니다. 프랑스도 법을 만들 때 제목이 아니라 번호를 붙입니다. 물론 프랑스도 번호만 붙여 만들었던 법을 분류해 법전을 만들기는 하고, 베트남도 최근에는 법명을 붙이기는 합니다만, 아직 과거의 전통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지층에 남아 있는 화석처럼, 법을 보다 보면 그 나라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 정부가 바라보는 도시계획법과 도심재개발에 대한 시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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