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공정거래위원회의 고시 제정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의 부당특약 사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은 원도급사들이 공정위의 경고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란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공정위는 지난 6월 ‘부당특약고시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당특약이 줄지 않자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지난 10월 현장의 실질적 애로사항 해소를 거듭 건의했다. 이에 공정위는 새로운 유형의 건설하도급 부당특약사례를 담은 부당특약 심사지침 개정안에 이를 반영, 올해 안에 개정·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한건설협회 등 원도급자 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가 새로 부당특약으로 설정한 사례는 △계약금을 10% 초과하는 보증을 요구하거나 특정보증사를 강요하는 행위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는 교부하지 않으면서 계약이행보증서만, 그것도 제출기한을 특정해 요구하는 행위 △계약이행보증 외에 추가보증 또는 현금예치를 요구하는 행위 △하자담보책임의 기산점을 원도급 위탁종료일로부터 설정을 요구하는 행위 △구체적인 수치도 없이 발주처와 원도급자 간 계약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요구하는 행위 등이다.

이외에도 최근 다시 고개를 드는 고질적 갑질들이 있다. 포함견적 방식을 통해 계약내용에 없는 공사까지 하도급사에게 떠넘기는가 하면 설계오류 등에 의한 피해나 민원처리·인허가비용까지 하도급사에게 떠안으라고 강요한다. 촉박한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한 돌관공사비를 미리 명시케 하거나 대금지급기일을 멋대로 미루기도 한다. 또 현금지급을 약속해놓고 어음수수를 요구하는 등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요구는 서면계약에서 빼고 구두로 한다고 하니 원도급사들도 이것이 부당특약이고 처벌 대상이란 것을 알고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지난달 21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은 하도급사들의 애로사항 해소를 적극 건의했고, 조 위원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협상 문턱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 공공공사부터 2022년 민간공사까지 종합건설과 전문건설간 업역 칸막이가 폐지돼 상호시장진출이 허용된다. 2억원 미만 시장은 2024년까지 유예하는 등 소규모 전문업체들을 위한 일부 보호장치를 남겨두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시장이 개방되는 만큼 당분간 무한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경쟁체제는 서로 각오해야 할 것 같다.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이다. 공정의 룰이 무너지면 경쟁이 필요없게 되고 도미노처럼 신뢰마저 무너지게 된다.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는 두더지 머리를 장남감 망치로 때리는 게임이 있다. 건설공사의 부당특약이 마치 두더지게임 같다. 잡았다 싶으면 다른 쪽에서,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고개를 쳐든다. 망치를 아예 휘두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이나 저항도 만만찮다. 망치를 진짜 망치로 바꿔야 하나. 갑들의 용의주도함에 혹시라도 공정위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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