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기고 정의당 민생본부장을 맡은 이후 우리 사회 곳곳의 ‘을’들을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 정부와 거대 정당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해내는 분들도 있지만, 애로 사항을 물어도 말을 삼키고 고개를 젓는 분들도 적잖이 만난다. 그분들은 이렇게 답한다. “을들은 말하면 죽어요.”

많은 경우 건설 하도급업체 관계자들의 반응은 후자였다. 공사물량을 계속 받아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갑질’을 견디고 있을지 짐작이 된다. 정의당이 운영하는 갑질신고센터를 찾아오는 전문건설업체들은 대부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해오는 경우들이다.

이렇게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도급대금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지급보증 제도다. 지급보증은 원청이 파산 등과 같은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대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을’인 하청기업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전문건설업체들이 이렇게 말한다. “원청은 계약하는 날 이행보증서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지급보증서를 구경도 할 수가 없어요. ‘을’의 입장에서 지급보증서 보여달라고 강하게 얘기하기도 어렵고….”

건설하도급 계약이행보증과 대금지급보증은 원?하청의 상호적인 의무임에도, 보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조차 불평등하다. 하청업체는 보증서의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급보증을 했다는 원청의 말만 믿고 무리한 요구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정작 원청이 지급보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확인하고 절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달 12일 원청(원사업자)이 발급받은 지급보증서나 그 사본을 하청(수급사업자)에 의무적으로 교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유다.

이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 △원사업자의 신용등급에 따른 면제조항을 삭제하고 △계약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 직불 합의를 하는 경우에만 지급보증 의무를 면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지급보증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피력하고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데 따른 성과다.

법과 제도의 미비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때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일을 해주고 돈을 떼이는 하도급업체들이 여전히 많다는 건, 중소기업의 경영자들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노동자들의 가족, 그리고 2차·3차 협력업체들까지 모두 언제고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도급법은 제1조에서 이 법의 목적을 이렇게 적고 있다.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를 확립하여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 보완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이 목적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입법노동자로서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정의당 의원(정무위, 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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