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재개발정비사업에서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후 조합원 분양계약절차를 거쳐 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공사 현장에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토지가 포함돼 있고, 그 중에는 도로 등 행정재산도 있습니다. 조합은 공동주택을 신축하면서 도로, 공원과 같은 새로운 기반시설도 설치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공사기간 동안 국공유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특혜논란이 발생했고,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지자체들에게 행정재산이었던 국공유지에 대한 대부료를 조합으로부터 징수받으라는 지시를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지자체들은 조합을 상대로 공사기간 동안 국공유지 대부료 지급을 구하게 됐습니다.

국민권익위 판단의 근거는 ‘정비사업조합이라고 하여, 공사기간 동안 국공유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7년 도시정비법 전면개정 시 대부료 면제 규정을 두면서(제97조 제7항), 적용범위를 소급시키는 규정을 따로 마련하지 않은 것도 근거가 됐습니다. 서울의 금호, 왕십리 등 일부 재개발구역들에서 하급심 법원은 조합이 지자체에게 대부료 상당을 부당이득반환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왕십리뉴타운 3구역에도 동일한 문제가 있었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다른 시각의 판단을 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개발사업에서 신 정비기반시설은 지자체 등에 무상으로 양도되고, ‘신설 비용의 범위 내에서’ 구 정비기반시설은 조합에게 무상으로 귀속됩니다. 도시정비법에는 무상양도·귀속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질적으로 양자는 대가관계에 있고, 사업시행인가 단계에서 그 범위들을 협의해 정하게 됩니다. 법원은 위와 같은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도시정비법에서 무상양도 및 무상귀속 제도를 둔 것은 위와 같은 균형 하에서 별도의 계약절차 없이 간명하게 지방자치단체가 신 정비기반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행정처리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며, 실질적으로 사업시행인가단계에서 서로의 토지를 교환하거나 매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매매계약 대상인 토지에 대해 먼저 사용하더라도 부당이득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가 있게 되면 시행자는 법에 따라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발생합니다. 이를 근거로, 시행자가 공사기간 동안 행정재산을 점유한 것에 대한 비용을 지급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판결은 도시정비사업 전체의 구도 속에서 사업시행자가 공사기간 동안 구 기반시설을 점유한 행위의 성질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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