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가는 것 포기했어. 가족들이랑 그냥 집에 있어. 상황이 만만찮을 것 같아”

중국의 카카오톡인 ‘위챗’에서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한 달 전만해도 자신감에 충만한 ‘중화민족’이었던 그였다. 상하이에 사는 중국인 친구 ㄱ씨 얘기다.

중국의 부상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미 G2로 부상한 중국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듯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 무역전쟁도 대세를 뒤바꾸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중국의 발목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붙잡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물론 경제수도인 상하이도 잇달아 확진자가 나오면서 중국인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적지 않아 보인다. 주요 교통망은 마비됐고, 자금성 등 상징적인 장소들도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반 사스가 창궐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볼 때 징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때 ‘깔딱고개’를 겪는 사례가 많았다. 그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일 줄은 몰랐을 뿐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점에서 그동안 묵었던 정치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불거진다. 덩치는 한껏 커졌는데 그에 걸맞게 정치사회경제적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만 잘 만들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하면 외려 대재앙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어서던 1993년과 1995년 사이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은 무너졌고 아시아나항공은 추락했다. 구포 무궁화열차 전복사건도 이때였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도 딱 그런 경우다. 중국 전역이 초고속열차로 연결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손쉽게 퍼져나갔다. 촘촘해진 하늘길은 감염자들을 전세계로 날랐다. 게다가 열이 나는 사람들은 해열제를 먹고 방역망을 피했다. 이에 반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판단은 굼떴다. 어쩌면 특정당이 독점하고 통제하는 중국의 정치제도의 한계일 수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중국 의료기반시설의 민낯도 드러냈다. 국민소득 1만 달러는 국민 평균소득 1만 달러를 뜻하지 않았다. 부자와 빈자, 해안도시와 내륙도시의 부의 차는 컸다. 그 부만큼 의료의, 위생의 질적 차이도 컸다. 한 중국인 친구는 “내륙 지방으로 들어가면서 병원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된 또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어선 우리의 인프라는 어떨까. 경제학에서는 1만 달러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고비이듯이 3만 달러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고비로 본다. 시민들의 기대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선 상태에서 인프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정치사회경제적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먹통이 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1339, 태부족한 격리병동 등은 우리의 인프라도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다 갈수록 벌어지는 지역의, 세대의 소득격차와 자산격차는 소프트웨어측면에서 사회적 인프라를 흔들 수 있다. 전세기로 데려온 우한 교민수용을 극렬 반대한 일부 지자체 주민들의 모습은 위기시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섬뜩했다.

위기에서의 회복력을 리질리언스(resilience)라고 부른다. 정치경제사회적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잘 작동할 때 높아지는 능력이다. 우리 사회의 리질리언스는 얼마나 될까. 중국을 보며 우리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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