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사기나 착오를 이유로 ‘취소’를 하지 않는 한 번복을 못하는 것이 계약의 원칙이다. 그러나 하도급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허용하고 있지 않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에서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합의 하에 대금을 결정했음에도 그 대금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불공정한 행위로 보고 규제를 하고 있다.

즉, 하도급법 제7조에서는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정상적인 거래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낮은 수준에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것을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행위’로 보아 양 당사자가 합의를 해 대금액을 결정했음에도 불공정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하도급업체의 입장에서는 이미 쌍방 합의해 계약을 체결한 건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대금의 부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인데 법적으로는 이러한 부당하게 체결된 하도급대금에 대해서도 ‘부당한 금액’ 만큼 하도급업체가 손해금으로 청구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도급업체의 입장에서 도대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서도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이 결정됐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무엇인지 건설 하도급에서 흔히 발생하고 있는 사례를 몇 가지 들고자 한다.

우선 원사업자가 낮은 견적가를 받기 위해 공종, 품목, 물량, 지급자재 및 현장상황(민원상황 포함) 등 하도급대금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내용에 관해 자료·정보 등을 수급사업자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않거나 다르게 제공해 결정된 하도급대금은 부당하게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하도급대금을 결정함에 있어서 공법이나 자재 및 단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장상황에 대한 정보제공을 원사업자가 제대로 하지 않아 수급사업자가 낮은 견적가를 제시해 계약을 하는 경우다. 주로 기존업체와의 타절 후 후속업체와 계약시에 많이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경우 원사업자가 다른 업체의 견적서를 제시하면서 이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원사업자가 건설산업기본법 등 관계법령에 의거한 하도급 계약금액 또는 수급사업자의 견적가를 포함한 하도급관리계획을 발주처에 제출해 발주 받은 후에는 실제 하도급계약 금액을 보다 낮은 수준으로 재조정하거나 견적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발주처에 제출하는 하도급계약서 외에 별도로 하도급대금의 지급 및 정산목적으로 ‘이면’으로 체결되는 하도급계약서가 존재하는 경우에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하도급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혹은 계약 도중에 신규 발주하는 공사건에 대해 원사업자가 임시단가(가단가)를 적용해 기성금을 지급해 주다가 추후 적정한 시장단가에 맞춰 제대로 정산해 주지 않는 경우도 하도급대금의 부당결정행위로 판단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하도급 계약 체결 이후 설계변경 등에 따른 신규항목 등에 대한 물량 및 단가를 수급사업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작성한 변경내역서를 제시하면서 변경 계약에 서명할 때까지 기성금 지급을 유보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급사업자를 압박해 신규항목 등에 대한 하도급대금을 낮게 결정하는 경우도 부당한 결정행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사종료 후 하도급대금 정산시에 흔히 발생하는 경우인데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거래관련 인감도장을 맡아 보관하면서 일방적으로 이를 하도급대금 결정에 합의한 것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발주처에의 기성보고 및 기성금청구시에의 사용목적으로 수급사업자의 인감도장을 맡겨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원사업자가 악용해 준공조서의 작성뿐만 아니라 공사대금에 대한 ‘합의서’까지 일방적으로 작성해 두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효력을 인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행위로 볼 수 있다.

건설 하도급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행위는 앞서 예를 들고 있는 경우 외에도 매우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어쨌든, 계약에 의해 자유로이 대금을 약정했지만 하도급업체가 사실상 경제적 약자로서 ‘을’의 지위에 있음을 감안해 하도급대금 자체가 ‘부당’하면 ‘불공정’하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도 이러한 하도급법의 취지를 반영해 보호를 해 주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므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하도급업체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부당하게 결정된 대금만큼 그 손해를 충분히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법여울 변호사,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하도급분쟁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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