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회생절차개시신청을 이유로 한 하도급계약 해지만으로 계약이행보증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대법원 2020. 3 12. 선고 2016다225308호 판결)

건설공사도급계약에서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이행 최고 등의 절차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약정해지권 유보’라고 하며, 부도(당좌거래정지), 폐업, 회생절차개시신청 등이 있습니다.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위와 같은 사업상 문제가 발생 시 도급계약을 조속히 해지하여 종결하고자 약정해지권을 유보하는 특약조건을 설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도나 회생절차개시신청 등의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공사의 이행이 충분히 가능한 경우까지 특약조건에 따라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당하고, 계약보증금까지 청구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지난 3월12일 대법원에서 “채무불이행에 대한 고려 없이 회생절차개시신청만을 이유로 한 하도급계약 해지만으로는 계약이행보증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례가 나와 하수급인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관계>

원고(하도급인)는 피고 보조참가인(하수급인)과 사이에 하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하도급계약의 해지 등과 관련된 계약일반조건 및 계약특약조건을 아래와 같이 정하였습니다.

1) 부도, 파산 등 참가인의 귀책사유로 공기 내에 공사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 명백히 인정되는 경우, 원고는 서면으로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계약의 이행을 최고한 후 그 기간 내에 계약이 이행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당해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해지할 수 있다. 

2) 참가인이 사업경영상 중대한 사태(부도, 폐업, 휴업, 면허취소·면허반납, 파산, 해산, 화의신청, 회사정리절차 신청, 회생절차개시신청 등)가 발생한 경우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고 원고는 최고 등 사전절차 없이 또는 계약해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서면을 통보함으로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경우 계약해지에 따른 원고의 손실액에 상당하는 참가인의 계약보증금(또는 증서)은 원고에게 귀속된다. 

피고(○○보증보험)는 이 하도급계약에 대해 계약보증서를 발급했고, 이 보증보험계약의 보통약관 중 보험사고 및 보상과 관련된 규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회사는 채무자는 계약자가 보험증권에 기재된 계약(주계약)에서 정한 채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채권자인 피보험자가 입은 손해를 보험증권에 기재된 내용과 이 약관에 따라 보상하여 드립니다.(제6조)

2) 피보험자는 보험금을 청구하기 전에 주계약을 해제·해지하여야 합니다.(제8조 제1항) 피보험자가 제1항의 해제·해지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회사는 손해를 보상하여 드리지 아니합니다.(제8조 제2항) 제1항의 해지·해지는 보험기간 안에 있을 것을 요하지 않습니다. 

3) 보험사고는 계약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한 때 발생한 것으로 합니다.(제9조)

피고 보조참가인(하수급인)은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였는데, 원고는 참가인에게 계약일반조건 및 계약특약조건에 의하여 하도급계약을 해지한다는 통지를 하고 피고에게 계약보증금을 청구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보험사고에 해당하는 참가인의 계약상 채무불이행이 있는지 여부는 이 사건 하도급계약의 공사금액, 공사기간, 공사내용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참가인이 계약기간 중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건 하도급계약의 이행이 참가인의 귀책사유로 불가능하게 되어 보험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회생절차개시신청 전후의 계약 이행정도, 회생절차개시신청에 이르게 된 원인, 회생절차개시신청 후의 영업의 계속 혹은 재개 여부, 당해 계약을 이행할 자금사정 기타 여건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계약상 채무불이행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에 관하여 심리하지 아니한 채 회생절차개시신청은 사회통념상 참가인의 귀책사유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 해당하고, 참가인이 특약조건상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주계약을 해지한 이상 피고가 원고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는 계약이행보증보험에서 보험사고의 발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고,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하므로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판결의 시사점>

이번 판결의 시사점은 약정해지권이 유보된 경우 이로 인하여 하도급계약이 해지되었더라도 보증사고의 판단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하도급계약해지의 적법 요건은 보증사고 발생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 될 수 없으며, 채무불이행이라는 점에 대한 별도의 입증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하도급계약의 해지는 곧 계약보증에서의 보증사고의 발생이라고 쉽게 단정지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향후 보증금사고의 판단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안타깝게도 회생절차개시신청 등의 사유가 발생하기만 하면 하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특약조건이 부당하여 무효인지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없습니다.

아래와 같이 최근 시행된 공정거래위원회 부당특약 고시 및 건설산업기본법의 규정을 근거로 계약해지를 손쉽게 만드는 특약조건 자체의 무효 및 부당함을 주장해 볼 여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부당특약고시(2019. 6. 19. 제정)

Ⅱ. 부당특약의 유형

5. 수급사업자의 계약상 책임을 가중하는 경우

마. 계약 해제·해지의 사유를 원사업자의 경우 관계법령, 표준하도급계약서 등의 기준에 비해 과도하게 경감하거나, 수급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 하자다보책임을 과도하게 가중하여 정한 약정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2013. 8. 6. 신설)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부분에 한정하여 무효로 한다. 

6. 민법 등 관계 법령에서 인정하고 있는 상대방의 권리를 상당한 이유 없이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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