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가 공사대금 채무를 면하기 위해 기존회사와 형태‧내용이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해 자산을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신설회사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달성을 위해 회사 제도를 남용한 것이므로 기존회사 수급인은 신설회사에 대하여도 채무의 이행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 법원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기존회사 자산이 신설회사에 바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제3회사를 거쳐 넘어간 것이라면 어떨까요?

원고들 A, B, C는 건물 신축공사의 목공, 데크, 비계공사를 각각 하도급 받았습니다. 원고들이 공사를 진행하던 중 원사업자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현재의 건축주를 상대로 하도급법 제14조에 따른 하도대금의 직접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현재의 건축주는 당초 이 건물을 발주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발주자는 차용금 변제 목적으로 그의 유일한 재산인 건축주 지위를 제3회사에 넘겼고, 이 제3회사로부터 건축주 지위를 다시 양수한 자가 현재 건축주였습니다.

그런데 발주자와 현재 건축주는 이름만 다를 뿐 권모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한 회사이기 때문에 현재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대금을 청구한 것입니다.

하급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발주자가 정당한 변제 목적으로 제3회사에게 건축주 지위를 넘겼으므로, 이는 채무 면탈 목적의 회사제도 남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기존회사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됐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됐다고 하더라도,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회사의 다른 자산을 이용하고도 기존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되거나 정당한 대가 없이 자산이 이전된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19. 12. 13. 2017다271643 공사대금)

대법원은 제3회사로부터 현재 건축주에게 건축주 지위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주자가 차용한 자금이 사용되는 등 발주자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현재 건축주에게 이전됐거나 유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법무법인 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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