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코로나19가 소환한 ‘마당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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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코로나19가 소환한 ‘마당의 추억’
  • 원용진 교수
  • 승인 2020.05.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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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전통적으로 집에서 가장 넓은 곳은 마당이었다. 대궐 같은 집이든 농촌의 한 켠 찌그러진 집이든 다 그랬다. 마당의 어원이 ‘맏이’의 ‘맏’과 장소를 나타내는 ‘앙’이 합쳐진 것이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여곡절의 긴 세월을 보낸 후 뒤돌아보니 그 넓다던 공간이 집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한편으로 마당은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눈요깃감 신세가 됐다. 아파트 공간에서는 현관이라는 이름으로 신발 가두는 초라한 공간이 됐다. 완전히 소멸되진 않았으나 마당은 이제 기억 저편에 서 있는 시간의 편린에 머물고 있다.

원래 마당은 못 박아둔 용도를 지니지 않았다. 곡식을 말리는 건조처 역할도 하고,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노릇도 했다. 오랜만에 이웃과 친지가 모여 평상을 펴고 음식을 놓으면 잔치 공간이 됐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텃밭으로 변모했다. 혼사와 장례를 치르는 식장 역할도 오롯이 해냈다. 여름에 모깃불을 켜놓고 대소사를 논의하는 공론장 역할을 해낸 기억도 갖고 있다.

마당은 늘 비워 있긴 하지만 다채로운 변신으로 온갖 역할을 다해준 신비의 공간이었다. 그를 잃어버린 지금은 모든 공간에 하나씩의 역할을 부여해 덩그러니 임무수행형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실, 식당방, 공부방, 화장실, 안방…. 역할을 쪼개고 그 안에 역할 수행을 위한 가구를 배치해 집을 전에 비해 꽉 차고 번잡스럽게 해 뒀다.

그때는 편했고, 지금은 불편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건 코로나19 탓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바깥이 그리웠다. 하지만 바깥은 위험하다고 연일 경보다. 이럴 때 바깥과 안의 사이 공간이 숨통을 터줄 거라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평상에 걸터앉아 벌이는 담소, 마당에서 해내는 온몸을 비트는 맨손 체조, 볕을 쪼이다 벌어진 조각 잠, 쟁반 위 수박 위를 분주히 오가는 손들의 경주. 마당이 감당했던 일이다. 그만큼의 숨구멍에 대한 그리움이 치솟았다. 하지만 이미 떠난 마당을 그리워만 할 순 없다.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 경험으로부터 조각 배움이라도 얻어야 한다. 새 마당을 만들면 어떨까. 예전만큼의 마당이 아니더라도 집 안 자투리 공간에, 집과 집 사이의 또 다른 자투리에 마당을 짜내는 상상을 하면 어떨까.

온 식구와 온 동네가 다 사용하던 타작마당이 있었다. 주인이 없진 않지만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아 누구든 언제든 비워 있는 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언제, 누구랄 것이 없으니 자유로울 뿐 아니라 공적인 꼴을 하게 되었다. 그 공간은 사람을 끌어내 그곳을 오가게 만들었다. 거창하게 아고라(Agora)라는 이름까지 붙일 순 없으나 ‘편한 쉼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사라진 그 공간을 애닳아하던 데서 한 걸음만 더 내딛자. 그를 복원해 오늘로 끌고 오도록.

동네에 곳곳에 그런 마당을 갖추는 것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일은 입법자, 공무원, 도시 계획자. 건축 관계자 그리고 주민에 의해 일상화돼야 한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새 집을 지을 때, 역할 없는 공간 만들기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건축을 하는 측에서는 마당을 흉내 낸 ‘실내 마당’을 갖춰 가내 식구가 제 몸 가는 대로 지내도록 도울 일이다. 새 마당이라 해도 좋고, 상상 마당이라 해도 괜찮다. 자투리 마당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이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의지와 약속이다. 새로운 건축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창의롭게 비트는 작업이 필요하다. 임무별로 지워 준 이름을 걷어내고, 역할별로 할당된 가구를 재배치하며, 혼성적 공간을 자아내보는 지혜를 발휘할 일이다.

역사는 인간만이 독점해 만들진 않는다. 미운털 박혀 있는 바이러스도 역사를 이끄는 존재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만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로 인해 향수 젖은 채 과거를 찾기도 하고, 상상으로 미래를 열어젖히기도 한다. 어찌 그 향수와 상상이 마당에만 국한될까. 도시 계획, 도로와 광장, 건축의 외양과 용도, 어느 하나 바이러스를 비켜 갈 사안은 없다. 밉기는 하지만 바이러스는 그렇게 우리를 자극하고 있다. 인류의 삶과 가장 밀접한 비즈니스인 건축업이 맨 앞 줄에 서서 그 자극을 행복의 경지로 만들어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용진 교수] yongj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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