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주로 재판과 관련해서 원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사건과 민사사건도 같이 취급하는 필자로서는 이 격언이 재판보다는 공정위 사건처리와 관련해 더 와닿는 것은 왜일까? 이 칼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전문건설업체들이 공정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관해 대한전문건설신문 2018.12.3.자 논설의 일부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이 논설에서는 “(중략) 그동안 전문건설업체들에게 공정위는 갑질을 당해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을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도급업체를 위한 유일한 정부 부처로 건설 불공정행위 예방과 처벌을 위한 정책입안은 물론 실제 사건조사까지 전담하는 부서까지 개설했으니 전문건설업체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 그런 공정위의 존재가 언젠가부터 하도급업체들 사이에서 ‘공갈빵’으로 바뀌어 버렸다. 원하도급 관계에서 원도급업체의 불공정한 행위를 지적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려 자신의 신분까지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했지만 결과는 늘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원도급업체들 입장에서는 자료 확보면에서 우위에 있는 자신들이 공정위 조사방향에 부합했고 사건처리기간도 민사사건보다 훨씬 길어 하도급업체들에게 ‘고발하려면 고발해봐라. 하극상을 일으킨 업체로 소문난 너희가 먼저 부도나지’라는 식으로 대하게 만들었다. (중략)”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 사건현장에서 원·하도급업체 모두를 접촉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너무나 실상을 정확히 지적한 글이라고 본다. 2018년 12월에 이 논설이 나왔다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전문건설업체의 피해와 고통이 누적됐으면 논설에서까지 그것도 공정위를 거의 원색에 가깝게 비판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2020년 현재까지 공정위의 사건처리절차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됨으로 인해 그 비판은 비난, 더 나아가 절망 내지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절규에 공정위는 각종 정책 또는 제도개선으로 응답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하도급업체들의 피부에 와닿는 본질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인지를 못하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 내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정위는 부당특약지침 개정, 벌점제 개선, 공기연장에 따른 관리비 증가 시 하도급대금 조정요청 가능, 기술탈취 관련 조사시효 연장, 부당한 전속거래 강요행위 및 경영정보 요구행위 금지, 원사업자의 신용등급 불문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등 연일 여러 하도급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매우 낮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책과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작동될 수 있는 운용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정책 등은 책상 위의 활자에 불과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운용프로세스는 디테일이라고 하기에는 그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책과 제도를 현장과 연결시켜 원활히 작동되려면 그 운용프로세스가 좋아야 하는데, 사건과 관련한 운용프로세스는 ‘사건처리절차’라 할 수 있다.

공정위는 이 사건처리절차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중 조직과 인력증강은 공정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 실질적으로 하도급업체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문제점을 꼽아보면 첫 번째로 처리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과, 두 번째로 신고사건에 대한 심사불개시 또는 심사절차 종료 시 신고인에게 사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공문에 그러한 취지의 문구를 기재할 필요가 있다는 점, 세 번째로 상대방의 주장이 담긴 서면을 볼 수 없어 구체적 반박이 어렵다는 점, 마지막으로 조사권을 발동하지 않고 책상에서 서면으로만 조사해 자료가 없거나 빈약한 하도급업체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공정위는 늘 인력부족 문제를 들먹인다. 하지만 하도급법위반사건을 공정위만 하라는 원칙은 없다. 다른 정부부처 및 지자체에서도 하게 하면 된다. 어차피 전문성이 부족한 건 피차일반이다.

사법적으로도 구제의 길을 넓히기 위해 하도급법을 개정해 ‘사법상 무효규정 신설’, ‘입증책임부담의 전환 또는 완화’, 그리고 ‘의무적 3배수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이 모든 절차개선과 제도 신설은 공정위가 하도급법의 취지에 맞춰 진실로 하도급거래질서를 바로 잡고 하도급업체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못 할 것도 없는 사항들이다. /종합법률사무소 공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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