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수많은 건설분쟁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들이 바로 손해배상청구소송입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는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막연한 주장이나 증명으로는 안 되고, 손해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액수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안에 따라 ‘손해는 분명히 발생했으나 구체적인 손해액의 증명이 곤란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손해액을 증명하지 못했으니 원고는 소송에서 패소하게 될까요?

손해의 발생사실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손해액 증명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워 배상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명백히 부당하므로, 대법원은 “당사자 사이의 관계, 손해 발생의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 발생 이후의 제반 정황 등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법원이 손해액을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04. 6. 24. 선고 2002다6951, 6968 판결).

이러한 손해액 산정 방법은 채무불이행의 경우뿐만 아니라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인정됩니다(대법원 2005. 11. 24. 선고 2004다48508 판결). 대법원은 ‘조각품의 이전 작업상의 과실로 일부 조각품이 파손된 사안’에서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조각품의 객관적인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법원의 손해액 산정을 인정했고(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60447 판결), ‘수분양자들이 시행사 및 시공사를 상대로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제반 사정들을 참작해 분양대금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해배상액수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82438 판결).

이러한 손해액 산정의 법리는 2016년 입법에도 반영돼 민사소송법에 해당 규정이 신설됐습니다(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최근 대법원은 위 민사소송법 규정에 대해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특별법에 따른 손해배상에도 적용되는 일반적 성격의 규정”이라고 판시했습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8다301336 판결).

이 판결의 사안에서 원고는 운영하던 병원을 다른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건축사사무소와 리노베이션 및 증축에 관한 설계 및 감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건축사사무소가 작성한 소방설계도면에는 소방시설법에 따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장애인용 승강기 부분을 건축면적과 바닥면적에 산입해 넓은 면적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건물의 실측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하자가 있었습니다. 이에 원고는 건축사사무소에게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를,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사에게 건축사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원심(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손해액에 관한 원고의 구체적 주장과 증명이 없고, 구체적 손해액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은 손해액에 관하여 원고에게 증명을 촉구하거나,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손해액을 인정해야 했다”라고 판시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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