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8590원보다 1.5% 오른 금액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노동계가 최종 심의를 보이콧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오는 5일 정식 고시될 예정이다.

역대 최저 인상률이지만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이다. 노동계는 당초 16.4% 인상(1만원)을, 경영계는 2.1% 삭감(841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했었다. 노동계로서는 1998년 외환위기 때(2.7%)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2.75%)보다 낮은 수치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2018년부터 지난 3년간 32.8% 인상됐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될 경우 고용주는 근로자 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과 고용안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직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근로자의 삶도 좋아지고 더 나은 사회가 돼야 하는데, 꼭 그렇게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8720원이라고 해서 딱 그 돈만 주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직접적인 노동의 대가이다. 근로자가 받는 임금에는 이러한 최저임금 외에도 휴일수당, 연차휴가수당, 주휴일수당 등 직접 노동을 하지 않고도 지급해야 하는 법정수당들이 포함돼 있다. 예컨대 내년도 최저임금을 일당으로 단순 계산하면 8720원에 8시간을 곱해 6만9760원이 된다.

그러나 고용주는 근로자에게 이 액수만 주는 게 아니라 각종 법정수당을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에 10만원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월급으로 계산하면 182만2480원이다. 2018년의 월 157만3770원보다 24만8710원이 오른 액수이다. 소규모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는 만만찮은 부담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수입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는데 근로자 임금은 계속 오르니까 고용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종업원 수를 줄이는 것 외에는 특별한 묘안이 없는 것이다.

결국 노동계나 경영계 모두 ‘아쉽지만 수용’이라는 합리적 양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미증유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덮친 경제적 전시상황 아닌가. 경제뿐 아니라 모든 미래가 불확실한 지경이다.

일본도 지난달 22일 11년 만에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동결했다. 시급 901엔(약 1만원)이다. 아베 신조 정부 들어 소비 진작을 위해 4년 연속 매년 3%씩 인상해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 여파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기왕 고통을 분담하기로 했으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사정이 함께 이 위기를 돌파해나가야 한다. 노동계에서 이번 결정에 더 이상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사측에서는 힘든 경기여건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이 최저임금 최소 인상 결정이 주는 함의(含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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