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사회적 개념을 엮어 보려 한다. 아마 현실적으로 둘이 같이 존재하기는 어려우나, 이상적으로는 둘 다 놓쳐서는 안 되는 사회적 지향점을 가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경우는 ‘모순’에 해당되는 것으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하나는 버려야 하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상충관계(trade-off)를 가지고 있어서 둘이 동시에 존재할 수는 있지만, 하나를 강조하면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의 소외를 감수해야 하는 것도 있다.

특히, 경제적인 이슈에서 그러한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라는 시스템의 속성상 모든 문제가 자원의 유한성에 걸리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에 자원을 무한정 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제 이슈가 ‘성장과 분배’이다. 성장은 효율적인 경제 구조를 통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성장으로 얻어진 성과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5000만 인구 중 한 사람이 그 성과를 다 가져도 된다. 반면 분배는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이 성과를 나눠 가지면 된다. 경제 상황이 호황이든지 불황이든 위기이든 중요하지 않다. 가능하면 구성원들이 경제적으로 공평하기만 하면 된다.

두 번째로는 이전 정부에서 하도 논란이 됐던 ‘증세 없는 복지’를 들 수 있다. 복지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돈이 들어간다. 그것도 복지는 국민이 체감해야 그 성과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증세를 하지 않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 작은 정부를 원한다면 복지는 포기해야 한다. 복지를 확충하고자 한다면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니 증세 없이 복지를 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주장이 참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는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높인다는 것이다. 경제의 고용창출력은 한정되어 있다. 기업에게는 ‘직원 수’보다 ‘총 인건비’가 중요하다. 직원을 많이 뽑으면 개인별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경제 전체로도 마찬가지이다. 취업자 수를 늘리는 양적 목표에 치중한다면 당연히 개인의 임금이나 근로 안전성과 같은 질적 수준은 보장되지 못한다. 반면, 정부가 강제로 임금을 올리고 정규직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강행한다면 취업자 수는 늘기 어렵다. 두 가지의 목표를 모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 같은데, 정부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나고 새로운 경제 이론을 가지고 있나 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뉴딜과 고용 창출’도 있다.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형 뉴딜 사업 중에서 디지털 뉴딜을 통해 약 9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란다. 아직 세부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아서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아마 그 정책의 기본적인 고용 창출 프로세스는 ‘디지털 뉴딜’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에 있다고 추측된다. 그런데 다른 건 모르겠으나 디지털과 고용의 연결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디지털화’는 아무리 그럴듯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사람이 할 일을 전산으로 대체하는 것’ 또는 ‘노동의 기술로의 대체’이다. 물론 디지털화를 구축하는 데에 또는 운영하는 데에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겠으나, 그보다 디지털화로 없어지는 일자리가 훨씬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디지털 뉴딜이 몇 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많은 정부들에서 역설적 단어 조합을 통해 동시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잡으려는 시도는 꽤 흔한 편이다. 현실적으로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아마 그러한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수사(修辭)를 자주 쓰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버려지는 쪽의 표(票)를 잃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고려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그러한 캐치프레이즈가 국민들에게 잘 먹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멀리 본다면 이러한 ‘정치 언어’는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국민들이 깨달을 수도 있다. 나아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했을 때,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헷갈려 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정책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이다. 가장 좋은 정부는 사회 구성원들이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할 때 ‘이 방향’이라고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정부이다. 어떤 때에는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필요하지만, 어떤 때에는 ‘국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필요하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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