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글로벌 기술 지배력은 막강하게 유지돼 왔다. 그 배경에는 특정 기술 분야마다 세계를 지배하는 우수한 강소기업들의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독일의 기술 투자정책은 현장 중심의 상향식 연구개발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개별 중소기업에 대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결고리를 담당하는 기관이 민간주도의 독일산업연구조합연합회 산하 산업연구조합이다. 이러한 산업연구조합 가운데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기관이 응용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프라운호퍼’이다. 유럽 최대 응용기술연구소인 프라운호퍼는 얼라이언스(alliance)라는 독특한 체제로 운영된다.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전국 40개 도시 60개 연구소가 프로젝트별로 거미줄처럼 엮여 협력하는 방식이다. 독일 공대생이 선호하는 직장 1순위다.

국내에서는 연구전담 기관 형태로서 정부가 출연한 25개의 연구소, 15개의 전문생산기술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는 11개의 기초 분야연구소와 14개의 응용연구 연구소로 분류돼 있다. 전문생산기술연구소(전문연)는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에 의거해 만들어진 기관으로서 산·학·연·관의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구축해 특정 산업의 기술혁신에 필요한 연구개발을 수행함으로써 국제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두 가지 형태의 연구기관은 정부 주도로 설립 및 운영이 되는 조직이다.

그런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연구개발 생태계에서의 제3섹터로서, 국내에도 독일과 같은 민간주도의 연구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조직은 1986년 제정된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에 의해 설립된 산업기술연구조합들이다. 현재 국내 산업기술연구조합의 수는 47곳이다. 산업기술연구조합육성법은 산업기술의 연구개발과 선진기술의 도입·보급 등을 협동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산업기술의 향상을 통한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제정한 법이다. 정부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조합을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훌륭한 취지의 제도이다.

그렇지만 하향식 연구개발과 정부 주도 정책 위주로 운영되면서 연구개발의 생산성은 늘 의문시되고 있다. 민간주도로서 상용화 단계 직전까지의 상향식 연결고리를 담당할 조직의 설립을 법제화한 지 35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 이를 활용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는 높지 않았다. 현재 47개의 산업기술연구조합 중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연구인력을 확보한 곳은 많지 않다. 반면에 일부 연구조합은 수백 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확보해 경쟁력 있는 민간 중소·중견기업 및 대기업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에서는 제3섹터로서의 연구조합의 활용에 대해 법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기업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통한 산업기술의 향상을 도모하는 상향식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각 연구조합은 관련 연구조합 간의 협력 및 중소·중견기업의 조합원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우수 연구인력을 추가 확보해 협력·상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방안 중의 하나로서 독일 방식의 예를 들면 관련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해당 산업의 연구조합과 정출연 및 전문연과의 연대를 구축하고 중소기업들이 이 조합을 통해 기술개발을 제안하면 정부가 제안서를 평가한 뒤 지원을 하고 조합은 기업 및 연구기관들과 협력해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많은 기업들이 강소기업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과 기업의 발상전환에 대한 동기 부여와 기술개발에 대한 공유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제3섹터의 활용은 정부가 가진 훌륭한 패 중의 하나이다.

국가 차원의 장기적 비전과 더불어 시장에서의 가치와 기업의 존속 가치를 기준으로 연구개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에 대해 산업기술연구조합의 활용을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때가 됐다. /고등기술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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