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설화(說話)다. 지난 20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 말이다.

진 의원은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 임대주택을 둘러봤다”며 “방도 3개가 있어서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발언이 나가자 인터넷 등에선 난리가 났다. ‘진선미 의원부터 아파트에서 임대주택으로 이사해 봐라’, ‘여당 의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등 반응이 차갑다. 국회의원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진 의원은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아파트 전세권을 갖고 있다.

야당 의원들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진 의원의 발언은 방 개수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지적인 나태함”이라며 “더 암울한 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국민 인식을 ‘환상이나 편견’으로 치부하는 고압적인 태도”라고 꼬집었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도 “잘못된 정책을 쿨하게 인정하면 될 것을 궤변으로 꿰맞추려다 보니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황당 발언들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의 발언은 그가 국회에서 주택·국토 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위원회’의 위원장이기 때문에 기자 개인으로서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진 의원 발언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11·19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을 곱씹어보면 정부와 여당이 주택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진 의원 발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세난 대책을 발표할 당시 국민 관심은 아파트 전세 물량을 어떻게 늘려줄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서울에 공급되는 아파트 전세 물량’이 몇 채인지를 두고부터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전에 열린 브리핑에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건설형 임대가 모두 아파트”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서울 아파트 전세 공급 물량은 1952채’라고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늦게 국토부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급하는 아파트 전세 물량이 빠졌다”며 뒤늦게 1540여 채를 추가해 달라고 밝혔다. 결국 전세난 대책을 만든 정부 공무원들조차 아파트 전세 물량이 얼마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아파트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주택 유형 1순위는 단연 아파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이달 발표한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구입 희망 주택 유형’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69.3%가 ‘아파트’를 선택했다. 주변 환경·방범·주차·생활 편리성 등을 감안하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정부는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세대·연립 대량공급’ 방안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걸로 모자라면 상가와 숙박업소를 개조해줄 테니 들어가 살라고 한다. 주택은 사는 데만 문제없으면 되는 곳, 넓고 비싼 아파트를 원하는 건 탐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떠올릴 만한 아이디어를 획기적인 발상인 양 자랑한다.

지금부터라도 부동산 정책에 관련된 분들이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들이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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