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희망을 찾는다.” 도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방법론이다. 화려한 도시는 늘 눈이 부실 정도로 자신을 뽐낸다. 그 화려함 탓에 도시의 뒤안길에 버려진 역사적 잔재는 은폐된다. 그래서 도시의 화려함만 늘 성공의 표상이고, 발전의 징표인양 떠받들어진다.

벤야민은 그 화려함 뒤에 은폐된 잔재를 찾고자 했다. 그 잔재를 모아 과거를 회상하며 도시에 새로운 희망을 주자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많은 이들은 지금을 벤야민 르네상스라고 부르며 그의 도시 철학을 소환한다. 그리고 우리 삶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철학으로 대한다.

벤야민에 살짝 기대어 말하자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늘 우울하게만 대할 일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폐허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친구와의 만남, 동료와의 수다, 심지어 친지와의 조우조차 막고 있다. 하지만 벤야민 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파괴 존재가 아니라 생성의 존재다. 벤야민의 방법론으로 보아 바이러스는 새로운 지혜를 배울 기회를 전하고 있다. 삶의 조건을 바꾸어 낼 순간을 맞고 있다며 벤야민의 방법론은 우리에게 조언하고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슬로건을 한국 사회가 내걸은 기억이 있다. 슬로건의 약발이 먹혔던지 지금 우리는 비교적 앞선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속되긴 하지만 새로운 슬로건을 제안해보자. 이젠 정보화를 넘어 앞선 위생화를 내걸고 그를 실천할 때가 된 듯하다. 위태로운 위생을 구해내고 새로운 희망의 위생을 강구할 사명의 시간을 맞고 있다.

생명 건지자는 슬로건이니 누구든 쉽게 거부할 리는 없다. 다만 그 슬로건의 밑바닥에다 공생의 철학을 담아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 끌어올릴 일이 소중하다. 모두가 차별 없이 안전하게 건강하게 사는 지혜와 실천 방안을 희망의 위생화 안에 담아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위생화를 지렛대 삼아 사회를 혁신하는 지혜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희망의 위생화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해보자.

우선 위생화 문제는 인간 생태계 보호와의 연관 속에서 고민돼야 한다. 특정 공간으로 인구가 몰려드는 일은 인간답게 사는 위생화를 위협한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위협하는 일은 제1번 순위로 규제돼야 한다.

밀집된 인구는 경쟁을 유발하고 인간 생태계를 위협한다. 인구가 빠져나간 곳의 인구 감소에 인간 생태계 피폐로 인한 인구 감소가 보태지면 공동체 소멸이라는 재앙을 맞게 된다. 이렇듯 위생화의 문제는 언제나 인간 생턔계 문제의 연관성에서 정리되고 강조돼야 한다.

위생화의 고민은 의료계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모든 사회적 제도가 그를 우선 순위에 놓고 고민해야 한다. 위생화를 고민하는 교육, 정치, 도시개발, 건축, 공간배치가 필수여야 한다. 온 사회 제도가 위생화를 자신의 존재 이유에 포함시켜 가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위생화를 지렛대 삼아 사회적 제도의 혁신도 동시에 이뤄야 한다.

전통적으로 위생화는 강제 방역이나 권위적 의료 시스템과 함께 소환됐다. 새로운 희망의 위생화는 그 같은 권력의 거품을 걷어야 한다. 자발성과 민주성을 배경으로 하는 위생화가 돼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 국면은 개인이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네트워크 속 개인임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비말 공동체 속에서 살았음을 배웠다. 나의 위생화가 곧 사회의 위생화로 연결되고 있음을 경험했다. 주변의 위생화가 나의 위생화이고 나의 위생화가 곧 공동체 위생화로 연결되고 있음을 배웠다. 바이러스 폐허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실천하는 지혜를 배우는 일을 놓치지 말 일이다.

2021년.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가 이뤄져 새로운 위생화의 원년이 되리라 희망한다.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위생화 이상의 위생화 사회를 맞길 기대한다. 바이러스가 남긴 폐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고 그를 엮어서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삼아야겠다. 건설업계도 어려움 속에서 위생화의 희망을 찾고, 또 어려웠던 세상에 새로운 위생화의 희망을 주는 그런 2021년을 맞기를 기원한다. 다시 한번 “폐허에서 희망 찾기”이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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