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칼럼] 부동산시장 흐리는 ‘욕망의 탑들’
상태바
[보라매칼럼] 부동산시장 흐리는 ‘욕망의 탑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 승인 2021.01.11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 파주 교하에 있는 한 중소형 아파트는 지난달 3억4500만원에 실거래됐다. 그런데 부동산 포털사이트에는 4억5000만원에 팔겠다는 매물이 나와 있다. 호가가 1억원 정도 높다. 물론 매매가격은 같은 아파트라도 동이나 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촘촘히 살펴봤다. 같은 동, 같은 층수, 같은 크기의 다른 아파트는 3억6000만원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같은 물건인데도 호가가 9000만원가량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3억~4억원대의 집값을 감안한다면 호가 격차는 꽤 크다.

이 아파트뿐만 아니다. 서울 송파구의 초소형 아파트는 최근 6억7000만원에 거래가 됐다. 그런데 7억9000만원짜리 물건이 최근 등록됐다. 대구 수성구 외곽의 중형아파트도 최근 거래가는 4억7000만원이지만 물건은 6억5000만원에 나와있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초고가 아파트 얘기가 아니다. 특정지역만의 얘기도 아니다. 서민들이 사는 전국의 서민 아파트 시장이 요즘 이렇다. 호가와 실거래가 간, 심지어 호가와 호가 간에 가격차가 너무 크다. 오랫동안 부동산 시장을 바라봤지만 전 지역에 걸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본 기억이 없다.

집값이 거침없이 오르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있고, 때마침 강화된 세입자보호대책도 집수요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한가지 더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SNS다. 예전과 달리 SNS가 보편화되면서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게 확실히 빨라졌다. 갭투자, 자전거래, 영끌투자, 퇴끌투자, 명의빌리기 등 모든 기법들이 소개되는 대로 속속 전파된다. 예를 들어 실거래가보다 월등히 가격이 높은 매물이 ‘갑툭튀’(갑자기 툭튀어 나온다는 뜻)하는 현상은 자전거래 때 흔히 쓰던 수법이다. 시가 6억원 집이 8억원에 팔렸다는 기록만 남아도 그때부터 실거래가는 8억원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가격담합도 공공연한 것 같다. 지역별, 아파트별 단체단톡방을 만들어 아파트 소유자들끼리 가격정보를 공유한다. 주식의 ‘리딩방’처럼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 투기할 부동산 정보를 알려주거나 가격담합을 유도하는 방도 있다고 한다. 회원들이 미분양이거나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은 분양권을 저가에 집단 매수한 뒤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부동산은 금융과 달리 가격담합을 하거나 가격조작을 해도 크게 처벌받지 않으니 더욱 과감해진다. 투기적 편법이지만 어느새 나만 안하면 바보가 되는 재테크 묘수가 돼 있다.

몇 년 새 가격이 두 배씩 올라버린 아파트 가격은 집에 대한 관념마저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점점 집을 주거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투자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늘어난다. 집을 사면서 향후 집가격을 고려치 않는 사람이 이제 있을까. 겉으로는 ‘선량한 실소유자’라고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집값이 크게 올랐으면’ 하는 심리가 생겼다. 다주택자는 물론이고 1주택자라고 다를 바 없다. 다만 그 기대심리가 크냐 작냐 정도의 문제다. 집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뀌어버리면 대출을 규제하고 세금을 올리고, 주택공급을 늘린다고 해도 단기간에 집값이 안정화될 것 같지 않다.

돈은 넘쳐나고 투기수법은 빠르게 진화한다. 집값 상승의 맛을 알아버린 사람들의 욕망이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25번째 부동산대책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묘수가 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mypark@kyunghyang.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