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크게 바뀌어 시행되면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는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수정하면 된다. 다만 타이밍이 중요하다. 하되 즉각적으로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구도가 허물어질 수 있다.

전문건설과 종합건설의 업역 규제 폐지와 상호시장 진출은 근 반세기 만에 이뤄진 건설 생산체계의 일대 변화이다. 서로 상대가 있는 협상이기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도 어렵게 성사된 데는 정부와 전문건설, 종합건설 등 각 이해당사자 간의 양보와 타협, 상생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단서 규정이 있다. 2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는 2023년까지 3년간 전문 영역으로 남겨둔다는 조항이다. 시장을 무한정 개방하면 상대적 약자인 전문의 생존공간이 종합건설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4만5000여개 전문업체들은 대부분 하도급을 수행하며, 원도급공사 건수 중 96%는 규모가 2억원이 채 안 되는 소규모 공사이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일시에 둑을 허물어버리면 이들은 거대 자본 앞에 쓰나미처럼 휩쓸려 가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건설생산체계 개편에 따른 상호시장 진출을 올해 공공공사부터 처음 시행해본 결과 ‘2억원 미만은 전문 영역’이라는 법 취지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신사협정이 깨지고 공든 탑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유형이 이른바 연간단가 공사다. 몇 달로 따지면 수천만원 수준의 공사비가 년 단위로 가면 2억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종합에까지 길을 열어주는 사례이다. 주로 상하수도나 포장 같은 24시간 긴급 보수작업이 필요한 공사이다. 사고 횟수와 규모에 따라 년 단위로 2억원에 미달하거나 초과할 수도 있다. 각 공사별로 따져 2억원 미만 공사로 발주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 하나는 관급자재 관련이다. 가령 공사 예정금액이 3억원이라도 그중 2억원이 관급자재라면 실제 추정가격은 1억원에 불과하다. 당연히 2억원 미만의 전문공사로 분류돼야 한다.

이 사안 외에도 부대공사를 주공정에 포함시켜 발주하는 사례도 당장 중단돼야 한다. 지금까지 주력 전문업종으로만 발주되던 공사를 종합에까지 개방하면서 종합은 1~2개 면허만, 전문은 7~10개 면허를 요구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모범사례도 분명히 있다. 상호시장 개방 이후 부당·변칙 발주가 잇따르자 대구시에서는 지난 1월 말 ‘발주 세부기준에 부합하는 2억원 미만 공사는 전문공사로 발주를 검토해달라’는 내용의 시장 명의 협조문을 관내 발주처에 일제히 보냈다.

벌써 3월이다. 지금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올해 건설 수주가 다 끝난다.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조달청 등이 모두 나서야 한다. 발주처인 공공기관과 각 지방자치단체 발주자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무사안일, 행정편의로 가다가는 주체할 수 없는 쓰나미에 직면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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