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에는 점점 더 센 약을 처방하게 된다. 웬만할 때 치유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종국에는 내성이 생겨 약발이 먹히지 않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불공정 하도급이 그렇다. 원도급, 갑이라는 이유로 하도급사를 쥐어짜는 관행을 계속하다가는 강력한 규제 철퇴를 맞는 수가 있다. 더욱이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지난해부터 경기침체에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장기화, 역대 최장 장마와 폭설 등으로 우리 경제가 미증유의 곤경에 처했다. 건설업체들은 공사 기간 연장과 수주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이런 하도급업체들을 상대로 한 원도급사들의 불공정 하도급 사례가 끊이질 않으니 더욱 강도 높은 규제조치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유형은 다양한 데다 상황에 따라 교묘해지고 노골화된다. 수도권의 한 전문건설업체는 코로나19와 오랜 장마 등 불가항력의 이유로 공기연장을 요청했다가 원도급사로부터 ‘공기연장은 해주되 추가공사비는 없다’는 내용의 변경계약을 강요받았다. 또 다른 업체는 비슷한 사유로 공기연장을 신청했으나 두 달 치 간접공사비를 포기하는 조건을 요구받기도 했다. 심지어 원도급사가 발주기관으로부터 공기연장과 추가공사비를 받고도 하도급업체에는 이를 숨긴 채 갑질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몰래 혼자만 독식하겠다는 도둑놈 심보이다.

이 밖에도 각종 정부 정책으로 인한 부담을 하도급업체에 전가하거나, 돌관공사비 등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신종 부당특약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정책변경에 따른 공사에 대한 추가공사비 정산은 하지 않는다’, ‘야간 및 휴일 공사는 불허한다’는 등의 특약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공공 발주자인 정부나 지자체로서는 ‘계약자유 침해’, ‘사적자치의 영역’ 등의 이유로 함부로 나서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2018년 기준 법원에 접수된 공공발주 공사 하도급분쟁 건수만 약 1만9000건이었다.

사후규제의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발주자가 끼어들어 공사 전반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규제 필요성이 제기됐고, 결국 관련 법 개정안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1월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의원(더불어민주당, 충남 천안시병)이 발의한 ‘하도급법 일부개정안’이 그것이다. 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및 시·도별로 하도급감독관을 지정해 이들이 사업장이나 그 외 부속 건물을 출입하면서 검사 및 서류제출 요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발주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악의적이고 장기적인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최대 1.5배까지 늘리는 대신 피해구제 노력을 했을 때는 과징금 감경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마련했다. 불공정하도급이 무슨 불사조라도 되는가. 아무리 규제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자제를 모르고 불공정 하도급이 계속되는 한 더 엄한 규제, 더 심한 매를 벌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공공사부터라도 당장 이런 불공정 사슬을 끊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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