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1일부터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목적은 연구자의 자율성 제고와 책임성 확보, 혁신환경 조성 등 국가연구개발 혁신의 핵심 원칙과 내용을 담고 있으며, 부처별로 달랐던 연구개발 관리규정을 체계화해 연구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하며, 나아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촉진해 혁신적인 연구개발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조문을 살펴보면 상향식 과제기획을 원칙으로 하고, 연구비 사용계획을 간소화하며 협약·평가·정산 주기를 연차에서 단계로 전환하는 등 연구자의 자율성을 제고하고 있다. 

또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통합정보시스템의 운영 근거, 연구개발기관의 연구지원체계 구축, 국가연구개발행정제도에 대한 주기적 의견수렴 및 제도개선 등 연구개발 혁신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세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성실실패를 제도화하고 제재처분에 대한 이의가 있는 경우 독립된 기관이 재검토하되, 부정행위가 확정되는 경우 제재처분의 강도는 강화하는 등 연구자의 책임성 확보를 위한 사항들도 있다. 연구개발 환경 및 성과 활용의 활성화 등의 이슈 해결을 위한 내용들이 많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혁신법에는 연차 및 최종 성과물의 활용 및 확산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만, 연구기획과정 상 장단기적 관점에서 기술과 시장을 고려한 연구 분야의 선정과 집중에 대한 체계와 연구개발 과정에서 생산되는 지식을 담을 그릇에 대한 규정을 찾기는 힘들었다.

국내 연구개발비 비율은 GDP 대비 세계 1위이다. 2021년 한 해의 연구비 규모도 27조2000억원으로 2020년 24조2000억원 대비 12.3%가 증가했다. 그런데 연구개발은 거의 97%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수준은 세계 최고에 도달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2019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정부 연구기관의 연구생산성은 3.05%였다. 반면에 미국의 공공연구소들은 10%대이다.

연구비 예산 배분을 결정하는 기획 단계에는 정부의 정책성과 경제성, 기술성 등이 검토돼 진행된다. 하지만 그 상위에는 정책적 선언이 큰 꼭지를 쥐게 되고 과학기술자들의 목소리는 그 하위에서 맴돌고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계 스스로도 어느 순간부터 유행과 예산을 좇는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책과 유행의 주기가 고부가가치의 산업 연구개발(R&D)이나 도전적 과학기술의 주기에 비해 무척 짧고, 제대로 된 기술과 산업의 확립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유연성과 신념을 가지고 외풍에 휘둘림 없이 기획과 예산 배분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의 연구개발도 필요하다면 지원할 수 있는 유연성과 규정이 필요하다.

혁신법에서도 성실실패에 대해 규정한 부분이 있지만 성실한 실패에 대해서 인정하고 활용하는 문화가 정부와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조성돼야 한다. 또한, 연구개발의 성과가 시장으로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지식은 최종 성과물로서 표현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상의 성과 활용체계는 수행과정 상 축적된 지식을 담기가 쉽지 않다. 

연구개발 수행과정에서 생산되는 많은 지식과 자료,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는 연구문화의 조성을 통해 도전적 사고의 결과를 축적하는 체계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 연구개발 분야별 지식의 축적 기술을 확보하고 활용하는 것 또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만 매년 수십조의 예산이 미래를 위해 보다 효용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국가 연구개발의 프레임에 필수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국가연구개발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하는 중요한 사업모델이며 마중물이다. 단기적인 성과도출이나 홍보, 정치적 선언이나 유행 등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와 개발을 통한 기획과 수행, 성과 도출 및 활용 과정에서 그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 과학기술인들의 책임일 것이다. /고등기술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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