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펌 문을 두드리는 건설사들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규제 강타’를 맞은 건설사들의 법률자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로펌들이 아예 산업재해 전담팀을 꾸려 대응에 나설 정도다. 올해 초 산업안전보건법의 형량이 한층 강화됐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내년부터 시행된다. 여기에 건설기술진흥법, 건설안전특별법 등 다른 규제들도 있어 기업들이 다중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건설업계가 우려하는 핵심 규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올해 1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먼저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등 책임자에 대한 기본 양형을 기존 징역 6개월~1년6개월에서 1년~2년6개월로 높였다. 또 유사한 사고가 반복 발생할 경우와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특별 가중 요인을 둬 최대 징역 10년6개월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추가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안전조치 의무를 어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산업재해 발생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법인이나 기관도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고의 또는 중대과실이 있을 경우 경영진은 손해액의 최대 5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처벌 수위보다 무겁다.

규제의 칼날은 건설사 규모도 가리지 않는다. 동시에 수십개에서 수백개의 현장을 운영하는 건설업체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최고경영자가 이들 현장을 하나하나 직접 관리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소 건설업체들도 문제다. 추가적인 안전관리 활동으로 건설공사 공기 연장, 공사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이는 수익성 악화, 자금난으로 연결된다. 이를 버텨내지 못하면 사업을 접거나 아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성실하게 실천했음에도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도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도 처벌 수위가 가혹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업주가 산안법상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본은 징역 6개월, 미국·프랑스도 고의 반복적일 경우에만 징역 6개월을 선고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의 경우 개인에 대한 처벌이 없거나 상한형만 규정하고 있다. 경영책임자 등에 1년 이상 징역이라는 하한형을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온도차를 보인다. 

건설사들도 안전관리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장에 사물인터넷(IoT) AI 기반 실시간 모니터링시스템을 도입했다. SK건설과 대우건설도 현장 실시간 관제시스템을 구축해 위험요소를 파악, 조치하고 있다. 최근 새 경영화두로 떠오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도 안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어 이 부문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2~3년간 수많은 이들이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강해질수록 튀어 오르는 집값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 학습효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처벌로 각종 사고를 예방하려는 정부 정책은 산업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처벌만능주의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강한 규제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점 또한 명료하다. 기업들이 안전 및 보건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규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보완입법을 통해 발주자, 건설사, 근로자 등 모든 건설참여자들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게 우선이다. 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과 같은 삶의 질 향상 등을 고려한 적정 공사비 및 공사기간 산정을 통해 건설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안전관리가 작동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안전’이 작동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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