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주인의 허락을 얻지 않아도 오랜 시간 묘를 관리해 인근 토지에 관한 권리를 취득했더라도 토지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9일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지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자신의 땅에서 조상 묘를 관리하고 있던 B씨에게 토지 사용 대가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당시 A씨는 경매절차를 통해 경기 이천시의 한 땅을 사들였다. 그런데 해당 토지에는 B씨 조부와 부친의 묘가 있었다.

A씨는 자신이 2014년 10월부터 땅의 소유권을 갖게 된 이상 B씨가 토지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자신이 분묘기지권을 취득했으므로 토지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맞섰다.

분묘기지권은 관습법상 인정되는 권리다. 토지 소유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분묘를 설치해도, 20년 이상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분묘를 관리해왔다면 인근 땅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 분묘기지권을 취득했을 때 땅 주인에게 토지 사용료를 내야 하는지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나뉘었다.

1심은 시간 경과에 따라 분묘기지권을 취득했다면 토지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은 B씨가 분묘 인근 땅을 점유한 탓에, 땅 주인인 A씨가 다른 토지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봤다.

2심은 “토지 소유자는 분묘기지권의 존재로 인해 나머지 토지 사용에 대해서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분묘기지 부분에 대한 지료조차 지급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묘기지권자는 적어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로부터는 분묘 부분에 대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상당하다”며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전합은 분묘기지권을 취득해도 땅 주인이 토지 사용 대가를 청구했다면 묘를 설치한 사람이 이용료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간 관습적으로 분묘기지권을 인정한 건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토지 사용을 허락한 것이었을 뿐, 땅 주인과 분묘 소유자 중 어느 한 편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립한 분묘기지권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토지 사용료는 묘를 설치한 때부터 내야 하는 게 아닌, 땅 주인이 청구한 시점부터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봤다.

분묘가 설치된 시점부터 지급하게 하면 분묘기지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묘기지권이 민법상 지상권과 동일하지 않아 민법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는 점도 근거로 언급됐다.

이번 전합 판단으로 분묘기지권을 얻은 사람이 토지 사용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 대법원 판례는 변경됐다.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시점부터 토지 사용료의 지급 의무가 발생한다는 판례도 바뀌었다.

다만 3명의 대법관들은 “20년 이상의 장기간 평온·공연하게 분묘기지의 점유가 계속됐다면, 토지 소유자가 묵시적으로 무상의 토지 사용을 용인한 것”이라며 “분묘기지권자는 그와 같이 알고 분묘기지를 점유해 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뉴시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