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탄소중립 시대다. 온실가스(탄소)를 발생시킨 만큼 흡수하도록 해 실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산업이 다 연관돼있고 건설업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원자력발전 없이는 탄소중립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사용 후 핵 원료 즉, 폐연료봉이 문제다. 방폐장 같은 별도 저장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이론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용 후 핵폐기물을 오히려 청정에너지로 재활용할 수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른바 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라 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파이로프로세싱’이다. SMR은 발전용량과 크기를 대폭 줄여 모든 장비가 원자로에 다 들어간 상태로 수조 안에서 작동한다. 사고가 나도 주변 물로 열을 식힐 수 있다.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씀으로써 천연우라늄의 거의 전부인 ‘우라늄 238’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손잡고 미국 와이오밍주의 한 폐쇄된 공장에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1000억원)를 들여 소듐냉각고속로(SFR) 방식의 나트륨(Natrium)원자로 건설계획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한국형 소형원자로 ‘스마트(SMART)’의 수출을 추진 중이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소형원전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각계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폐연료봉을 고온 용융염에 쪼개 넣은 뒤 전기화학적 방식으로 유해 폐기물을 모두 회수해 SFR, LFR(납냉각로) 등과 같은 ‘4세대 원자로’에 핵연료로 다시 투입하는 기술이다. 이는 플루토늄 분리가 불가능한 건식 처리 방식이어서 핵무기 제조 걱정도 없다. 원자력 연구의 세계적 권위 기관들인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와 아르곤국립연구소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지난 3년 동안 공동 연구 결과 최근 “파이로는 경제적 기술적 가치가 있으며, 핵 비확산성도 충족한다”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한미 양국의 정치·외교적 합의가 남아있고 반원전 단체들의 반대도 여전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 탄소중립과 원전건설 계획을 패키지처럼 묶어 함께 발표하고 있다. 이는 수백조원 규모의 새로운 건설시장과 맞물려있다. 중국도 원전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와 불과 300~400㎞로, 코를 맞대고 있는 산둥반도 등 연안에 오는 2030년까지 100기 이상, 2050년까지 150기의 원전을 건설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황사나 미세먼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만에 하나 원전 사고라도 나면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전체가 방사능에 갇힐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이처럼 탄소중립과 소형원전 건설은 주요국들의 공통 현안이다. 기술적·경제적 검증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이 기술들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 알 수 없다. 원전 정책을 놓고 과학과 경제성 앞에 다른 무슨 논리가 더 필요한가. 어렵게 찾아온 국부와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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