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갓 부임한 어느 공공기관장이 물어왔다. “왜 수백억원 공공건물 신축공사 입찰에 응하는 건설사가 없느냐” 밑지는 공사라서 그렇다고 설명해 줬더니 갸우뚱하며 ‘이해 불가’ 표정이었다. 또 다른 사례. 모 지자체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공사비를 낮춰 입찰공고했는데도 여전히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그 지자체장은 의기양양했다. “봐! 내 말 맞지?”

첫 번째 사례는 공사비 책정을 낮춰도 너무 낮춘 결과이다. 두 번째 사례는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얘기다. 지자체가 공사비를 후려쳐도 건설사들이 손해를 감수한 채 입찰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자랑은커녕 건설인들을 옥죄고 부실 공사마저 유발할 수 있는 무책임한 얘기다.

표준품셈은 공종별 공사비를 표준화한 것이다. 설계를 기준으로 산출한 통상적·일반적 단가이다. 표준시장단가는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의 입찰단가, 계약단가와 시공단가를 조사해 산출한 공사비이다. 비유컨대 표준시장단가가 대형마트, 대량구매의 할인된 가격이라면 표준품셈은 동네가게, 소량구매 정가이다. 이 둘을 일률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예규에도 100억원 미만 공사에는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 이유이다. 

그런데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0억원 미만 공사에까지 표준시장단가 적용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셈법만 바꾸면 더 싸게 발주할 수 있으니 돈을 남겨 도민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이 지사 말대로라면 공공 발주 책임자들이 모두 예산 낭비를 해왔고, 건설사들은 과도한 이익을 남겨 먹은 셈이다. 과연 그럴까. 이 지사가 경기도의회에 처리를 요청했던 100억원 미만 공공건설 ‘표준시장단가’ 적용 조례 개정안은 또다시 불발됐다.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지난 14일 ‘경기도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 조례 일부 개정안’을 정례회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2019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이다.

경기도의회가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난 15년여간 공공공사 발주금액(예정가격)은 계속 큰 폭으로 하락했다. 낙찰률은 통상 예정가격 대비 85~87% 수준이다. 한편 표준시장단가는 표준품셈에 비해 85% 내외 수준에 불과하다. 본래 낮은 낙찰률에 공사비마저 더 낮은 가격으로 수주를 받으면 결과는 뻔하다. 공사하고도 남는 게 없으니 부실 공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건설근로자 임금은 줄어들고 일자리마저 잃게 된다. 공사품질이 저하되고 공사 안전사고가 늘어날 수 있다. 자재·장비업체 등 연관 업계도 함께 어려워져 연쇄 도산과 만성적 실업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 법안 명칭에 포함된 ‘지역건설 활성화 촉진’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촉진은커녕 중소 업체들 다 죽이는 개악이다. 중앙 정부도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다. 사실 이 조례는 법령에 근거하지도 않은 위법이다. 결국 적정공사비가 관건이다. 그저 ‘셈법’을 어떻게 하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 숙의해서 최선의 안을 도출해야 할 엄중한 사안이다. 물건값 흥정하듯 해서 건설업 망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삶을 더 팍팍하게 하는 일은 멈추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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