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지하에 2300t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는 뉴스는 놀라웠다. 매트리스, 자동차 카시트, 골프가방, 인형에다 동물의 사체와 해충들도 있었다고 한다. 40년 만에 대청소를 한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3억5000만원이라고 했다. 강남아파트의 상징처럼 알려진 이 고가 아파트 입주민들이 3억원이 없어 그간 악취를 참고 살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방 변두리의 저가 아파트도 이렇게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은마아파트는 왜 갑자기 40년만의 청소라는 ‘결단’을 내리게 됐을까?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지난해 6·17 부동산대책이 불씨가 됐다. 정부는 6·17대책을 통해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2년간 실거주를 하지 않으면 재건축 때 조합원 지위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투기를 막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한 조치였다.

은마아파트는 집 소유자가 실제 거주하는 비율이 30%밖에 안 된다. 집주인들은 투자용으로 이 낡은 아파트를 샀을 뿐 대부분 다른 지역에 거주했다. 아파트 지하에 쓰레기가 쌓여도 나 몰라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2년 실거주 의무조항에 난리가 났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의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이라 이른 시일 내 허가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들은 재건축이 돼도 새 아파트를 못 받고 기존 아파트를 현금 청산해야 한다.

집주인들은 은마아파트에 들어가 살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벽마다 갈라지고 녹물까지 나오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리모델링이네 뭐네 하면서 비로소 제집처럼 정비를 하다 보니 지하에서 올라온 악취를 더는 방치할 수가 없었다.

은마아파트 쓰레기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집을 어떻게 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은 거주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봐왔다는 얘기다. 심하게 말하면 투기의 대상으로까지 생각해왔다.

더 큰 코미디는 이후 벌어졌다. 7월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정책 발표 1년 1개월 만이다. 실거주 요건을 믿고 수천만원 인테리어를 했던 집주인들은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세입자들도 화나기는 마찬가지. 재건축 실거주 2년 의무조항은 때아닌 은마아파트발 전세대란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은 효력이 없다. 노후 아파트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거주하던 세입자들은 인근 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내몰렸다.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른 사람들만 바보가 됐다.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말이다.

이 와중에 재건축 아파트값은 더 올랐다. 법 적용 전에 조합을 설립하면 ‘실거주 2년’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조합설립에 속도를 냈기도 했다. 압구정 일부 아파트들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아내자 가격이 껑충 뛰었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다른 노후 아파들도 몸값이 덩달아 뛰었다. 공연히 집값만 부추긴 꼴이 됐다.

이번 정책뒤집기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부동산 시장에 “정책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신호를 줬기 때문이다. 여론에 따라서는 내년 대선까지 가지 않고도 정책이 폐지되거나 연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건축 관련 강화된 규제로는 이익의 절반을 환수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구조안정성 비중을 50%로 높인 재건축 정밀안전진단 강화 등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린 주요 배경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 불을 지르는 것은 정부의 정책실패라는 지적을 부인하기 어렵다. 차라리 아무 정책이든 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젠 별생각까지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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