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업계 등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법제화까지 마무리된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를 국가권익위원회가 2029년 말까지 유예하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즉각 재심의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의 당혹감이 역력하다.

진짜 당혹스러운 건 건설업계다. 이 문제는 시설물유지관리업에 국한된 게 아니다. 40여 년 만에 이뤄진 건설 생산체계 혁신을 자칫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더욱이 지금 한창 논의 중인 것도 아닌, 이미 결론이 내려져 시행에 들어간 정부 정책에 대해 또 다른 정부 부처가 별안간 제동을 건 셈이다. 건설혁신 작업에 재 뿌리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간다.

건설업 업역규제 폐지는 건설업계의 해묵은 과제이자 최대 이슈였다. 본격 논의를 한 것만 따져도 4개 정부, 15년 이상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결론을 낸 사안이다. 종합·전문건설, 원·하도급이라는 구조적 틀에 관한 것이었다. 공동운명체로서 양쪽 모두 건설업 주체이지만 때로 이익이 상충하고 경쟁·갈등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화와 협력으로 상생을 모색하는 합일점을 이룬 것이 건설생산체계 혁신이다. 사회적 대타협도 거쳤다. 혁신안의 두 핵심 기둥이 종합·전문 업역 폐지와 시설물유지관리업 정상화였다. 업역 폐지를 위해 관련 업종들을 묶어 대업종화 했고 시설물유지관리업은 종합이나 전문 중 선택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업종전환 시 가산실적을 부여하고 토목·건축분야 실적합산을 인정하는 등 이미 많은 특혜를 주기로 돼 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1994· 1995년) 등을 계기로 생긴 시설물유지관리업은 유지·보수라는 본래 영역을 벗어나 사실상 ‘만능면허’로 시장을 잠식해왔다. 건설 생산체계 개편 논의과정서도 충분한 의견제출 기회를 줬지만 반대로만 일관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시설물유지관리업의 구조조정을 2029년까지 연기하라는 의견 개진은 이미 시행 중인 생산체계 혁신정책을 중단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런 무책임이 또 있을까.

같은 국가 기관, 정부 부처끼리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아닐진 데 조율하는 모습조차 안 보인다. 권익위가 모든 사안을 심사하고 심판하는 곳은 아니지 않나. 한쪽만 억울하고 다른 대다수 건설업계는 그렇지 않다는 말인가. 필요한 경우 이른바 ‘각하(却下)’ 취지의 결정도 있을 텐데 그런 건 고려하지도 않나.

사실 국토부가 유지보수공사 실적 신고만 따로 떼어 건설산업정보센터(KISCON)에 넘기는 조치부터 잘못되긴 했다. 그 역시 생산체계 개편의 기초를 허물고 새로운 업역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전문 간 상호시장 진출 시행 이후 일부 불공정 사례가 나오자 국회도 나서서 입법으로 도와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상으로 가자. 권익위는 국토부의 재심의를 받아들이고, 시설물유지보수업은 가능한 전문공사로 업종 전환하며, 전문건설업체의 유지보수공사 실적 신고는 해당 협회에서 맡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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