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이 확정된 경우, 행정처분의 상대방은 행정청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행정처분이 항고소송에서 위법하다고 판단돼 취소되더라도 그것만으로 행정처분이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대법원 1999. 9. 17. 선고 96다53413 판결 등 참조). 행정처분의 담당공무원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그 행정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른 경우에 국가배상법 제2조 소정의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는지 여부는 피침해이익의 종류 및 성질, 침해행위가 되는 행정처분의 태양 및 그 원인, 행정처분의 발동에 대한 피해자측의 관여의 유무, 정도 및 손해의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손해의 전보책임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게 부담시켜야 할 실질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의해 판단합니다(대법원 1999. 3. 23. 선고 98다30285 판결, 대법원 2000. 5. 12. 선고 99다70600 판결 등 참조).

행정처분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 여부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해야 하겠으나, 법원은 공무원 과실의 인정을 제한하는 취지의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담당공무원이 처분 절차에 관한 행정청 내부의 기준에 따라 행정처분을 한 경우(대법원 2016. 8. 30. 선고 2015다247486 판결 참조), 담당공무원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판단에 따라 직무를 집행한 경우(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5다31828 판결 참조)에는 평균적 공무원으로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행정청이 관계 법령의 해석이 확립되기 전에 어느 한 견해를 취해 업무를 처리한 것이 결과적으로 위법하게 되어 그 법령의 부당집행이라는 결과를 빚었다고 하더라도 처분 당시 그와 같은 처리방법 이상의 것을 성실한 평균적 공무원에게 기대하기 어려웠던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두고 공무원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1995. 10. 13. 선고 95다32747 판결, 대법원 2004. 6. 11. 선고 2002다31018 판결 등 참조).

최근 대법원은 고층아파트 건축사업계획 승인을 불허한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된 사건에서, 원심판결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위 사건에서 원고는 15층 이하 건물만 건축할 수 있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고층 아파트 단지 건축사업을 계획하고 피고의 관계부서와 사전협의를 했고, 피고는 사업부지가 1종 지구단위구역으로 지정되면 사업계획승인이 가능함을 전제로 수개월에 걸쳐 여러 차례 보완요청을 해 원고가 보완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피고 시장이 주무부서와의 회의에서 원고의 사업계획에 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고, 결국 피고는 사업계획 불승인처분(이하 ‘이 사건 불승인처분’)을 했습니다. 이후 행정소송에서 이 사건 불승인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을 이유로 취소됐고, 이에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위 불승인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입니다.

원심은 피고의 담당공무원들이 이 사건 불승인처분에 이르기까지 업무를 일부 부적절하게 처리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보통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사업계획 승인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인정할 정도에 이르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 불승인처분을 한 피고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피고가 종전에는 문제 삼지 않거나 원고에게 보완을 요구해 관련 자료를 제출받았는데도 이러한 사유로 불승인 처분을 하려면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피고가 불승인사유를 판단하기 위해 수행한 업무는 현장실사를 나가 사진을 촬영해 분석자료를 작성한 것이 전부이고 해당 분석자료는 객관적이고 실제에 부합하는 자료도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담당 공무원의 업무 수행은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단순히 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만으로 행정청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되는 사건에서 법원이 제시하는 요건과 기준에 따라 공무원의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 행정처분의 객관적 정당성 상실 여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은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성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 기준과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의가 있습니다.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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