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건설업계는 8월 정도만 지나면 사실상 한 해 농사가 다 끝난다. 공공공사 상당수가 상반기에 몰아서 발주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예산 조기 집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기를 부양하고 예산 불용 및 연말 불요불급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역기능도 있다. 특히 건설업에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재정 조기 집행이란 원래 계획한 일정보다 예산을 앞당겨 사용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해 공공 재정의 과반을 상반기에 집중 투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재정투입 시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경기부양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불용률 감소에 따른 재정투입 총량 증가에 따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5년간 조기 집행 목표 및 실적만 보더라도 2017년 58% 목표에 59%를 조기 집행한 이래 꾸준히 증가해 올해는 63% 목표에 68.2%나 조기 집행됐다. 올해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위기 대응을 위해 목표, 실적 모두 역대 최고치였다.

다만 예산 조기 집행의 이점을 위해서는 가정이 따라붙는다. 재정 조기 집행으로 예산이 연내 100% 집행되거나 감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재정의 상반기 집중 투입은 하반기 경제 대응 여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재정적자 시에는 일시 차입 등에 대한 이자 비용을, 반대로 흑자 시에는 운용수익 기회가 상실되는 간접적인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하반기에도 계속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추경 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건설업에서는 좀 더 심각할 수 있다. 발주가 몰리는 상반기에는 자잿값이나 인건비 상승 등 공사비가 치솟게 마련이다. 단기간 과다한 공사발주로 인해 부실 설계나 부실시공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하반기에는 물량과 일감이 확연히 줄어든다. 여름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설계변경 여력도 떨어진다. 대다수 소규모 업체들은 한번에 여러 곳에 현장을 펼칠 수도 없고 보증 한도에 묶여 입찰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산 조기 집행 실적경쟁으로 인한 공무원들의 행정력 낭비도 문제다.

이쯤 되면 건설업의 경우 재정 조기 집행에 따른 조기 발주 정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상반기에 물량을 조기 확보할 수 있다고 무작정 좋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백신도 접종 주기가 다 다르듯이 좋은 정책도 집행 시기가 달라야 한다. 건설은 한철 메뚜기가 아니다. 자잿값이나 인력수급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서 물량이 안정적으로 배분되도록 조절해야 한다.

경기가 안 좋고 물량이 달릴 때 조기 발주 정책이 가뭄에 단비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뒤 재지도 않고 무조건 조기 집행 일변도는 곤란하다. 지출도 절묘한 타이밍이 관건이다. 예산 확보 이상으로 그 예산 집행의 시의성과 적정한 배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건설업에서 예산 집행의 운영의 묘를 살리는 일은 건설경기 부양 못지않게 정교하게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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