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업자가 새 상품을 출시하려 한다. 소비자들도 이 상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도 보다 많은 수요자들에게 상품이 공급되길 바란다. 여러 까다로운 행정절차를 거쳐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직전, 정부가 조건을 내걸었다. 상품가격을 두고 사업자가 책정한 1000원이 아닌 “700원만 받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근거는 기존에 팔던 옛 상품의 가격 등이다. 원료값과 인건비 인상, 이럴 경우 어느 사업자가 상품을 출시하려 할까. 여기서 상품을 ‘새 아파트’로 바꿔보자. 현재 주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가장 큰 규제요? HUG의 분양가 통제입니다.” 한 건설사 임원에게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풀어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묻자 한 말이다.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찍어 누르고 있고, 이런 분양가를 재건축 조합들은 받아들일 리 없으며, 시공사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서울?수도권은 물론 지방 재건축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분양가상한제 시행 후 HUG의 가격통제가 더 엄격해졌다. 때문에 분양을 앞둔 단지들은 후분양으로 눈길을 돌린다. 분양가는 기본형 건축비(집값)와 택지비를 합쳐서 책정한다. 후분양의 경우 물가와 인건비 상승률 등 건설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분양가에 제대로 녹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후분양이라고 쉬운 건 아니다. 착공부터 준공 시점까지 모든 공사비용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감당해야 하는데 그 이자 부담 또한 크기 때문이다. HUG가 제시한 분양가는 받아들일 수 없고, 후분양을 하자니 비용부담이 커서 갈팡질팡하는 대규모 재건축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시장에 제때 신규 주택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과도한 분양가 억제로 주택공급이 차질을 빚는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HUG는 지난 2월 조정대상지역 아파트 분양가의 기준이 되는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개편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변에 신축이 없으면 준공 20년 미만의 오래된 아파트 시세의 일정비율(85~90%)을 상한선으로 정하는 부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경우 구축 아파트가 밀집한 구도심이나 외곽 지역의 새 아파트 분양가격은 다른 지역보다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정부는 또다시 땜질에 나섰다. 현재 준공 20년 미만인 구축 아파트 기준을 10년가량으로 낮추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애초부터 정부의 분양가 산정기준이 합리적이었다면 주택시장의 혼란과 불안감은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분양보증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HUG가 독점하고 있는 분양보증 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복수 경쟁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지적했던 부분이다. 2008년에 개정된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체가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하는 선분양의 조건으로 HUG 또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정하는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분양보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토부는 분양보증 업무를 일반 보증보험회사에 허용하지 않고 HUG에만 독점적 지위를 허용하고 있다.

보증기관을 민간으로 확대하면 경쟁 체제로 전환된다. 건전한 경쟁은 합리적인 분양가 책정 및 분양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국토부는 분양보증시장 개방에 부정적이다. 불안정한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축소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정부의 주택정책은 실패했다. 분양가 통제를 통해 나타난 건 ‘집값 안정’이 아닌 ‘로또분양’이었다. HUG를 앞세운 분양가 통제, 더 이상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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