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독일은 주택 보급률 100%를 달성한다. 자가보유가 약 43%, 임대주택이 57%에 이른다. 주택가격과 임대료 안정이 사회적 안정으로 연결된다는 철학이 주택 정책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엄격하게 임대료 상승폭을 모니터링한다. 아울러 상승폭을 지방 정부가 제한하기도 한다. 주변 시세와도 큰 차등을 두지 못하는 등 꼼꼼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 주택을 둘러싼 갈등이 많지 않다. 주거를 사회복지로 보고 주거권을 인권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나라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런 독일도 최근 일부 지역에서 집값을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베를린 지역이 특히 그랬다. 베를린 지역으로 젊은 층이 일자리 등을 이유로 몰려들어 해마다 약 4만명 정도 인구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증가로 주택 문제가 심각해졌다. 1950년 이후 사회주택을 지어 값싼 임대료로 주택문제를 원만히 해결해왔었다. 베를린의 시 재정이 악화된 이래 지방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사회주택 20만 채를 민간 부동산 회사에 매각하면서 주택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회주택이 시장주택으로 전환되자 임대료와 주택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인구 증가까지 보태지면서 주택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돼 버린다. 실제로 5년 전에 비해 임대료는 40% 가까이 인상되기에 이른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사건도 동시에 벌어졌다. 베를린 시는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임대료 상한제를 가동시켜 왔다. 그러나 독일 헌법재판소는 임대료 상한제가 위헌 여지가 있다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른다. 올 4월의 일이다. 이미 연방정부가 주택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지방정부가 상한제 등과 같은 규제책을 발동시키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에 익숙한 독일 시민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독일기본법 제15조에 명시된 “토지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은 사회화를 목적으로 규정한 법률에 근거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유형으로 전환할 수 있다”에 근거해 운동을 펼쳤다. 베를린 시민들은 이 토지공개념을 기반으로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을 일으켰다. 베를린 최대 부동산 기업의 이름을 딴 이 운동을 통해 24만 채에 이르는 부동사 회사의 주택 몰수를 위한 시민투표를 성사시키기에 이른다. 9월26일 ‘3000채 이상을 보유한 민간 부동산회사의 주택 몰수 및 공유화’에 대한 주민투표가 있었다. 베를린 시민들은 찬성 56.4%, 반대 39%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투표만으로는 기업이 가진 주택을 당장 국유화할 수는 없다. 나치 시절의 큰 기업이 나치에 협력했기에 기업의 힘을 막기 위해 기본법 15조를 만들었지만 기본법 14조 사유재산 보호규정이 있어 일방적인 몰수나 국유화가 쉽지 않다.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데 24만 채를 몰수할 경우 베를린 시는 약 400억 유로를 부동산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베를린 시의 재정 상태에 비추어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의 투표 결과대로 실현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다만 정치인들은 베를린 시민들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놓였고, 주민투표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치적 효과는 낼 수 있었다. 

독일의 주택 보급률, 토지공개념, 주거권, 그리고 베를린 사태를 한국의 언론은 다양한 얼굴을 한 사건으로 소개했다. 임대료 상한제 실패라는 허위조작정보에 해당하는 타이틀도 보였다. 당연히 주택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한국 정부의 주택정책 존재 자체를 나무라는 언론도 있었다. 몰수가 아예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과장하는 보도도 나왔다. 대선 후보들의 주택 정책을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는 기사도 있었다. 입맛에 따라 독일의 주택 사건이 조리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보도의 양이나 빈도에 비해 우리가 얻을 교훈은 현저하게 축소됐다는 점이다. 주택문제를 인권과 복지로 다룬다는 사실, 그 근본은 토지공개념에 있으며, 법으로 설정해두었다는 사실 등은 잘 소개하지 않았다. 기본법으로 그런 조항을 정해뒀기에 주택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승화시킬 수 있고 주민투표로까지 이끄는 일이 가능함을 언급하는 곳도 찾기 어려웠다. 공개념이 부족하니 주택이 거래 상품으로만 여겨지고, 주거권은 복지나 인권이 아니라 능력으로 자리매김된다는 사실에도 침묵하는 측이 많았다. 백약이 무효인 것은 ‘영리한’ 주택 거래를 통해 한몫 잡아야겠다는 욕망을 잠재울 사회적 기획이 없는 탓이라는 우리 실정의 고해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베를린 주민투표사건은 먼 아시아의 이국 땅에서 꺾이고, 비틀어지고 있었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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