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외국인인 수분양자는 투자이민을 위해 제주도에서 휴양 콘도미니엄을 분양 받았습니다. 분양계약서에는 ‘’0000년 X월 X일까지 건축물 위쪽의 고압선을 지하에 매립하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분양 목적물인 휴양형 콘도미니엄 1개 호실이 있는 건물 C동 바로 인근에 고압선 송전탑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분양자는 분양대금을 지급했고 소유권 이전등기도 경료됐습니다. 분양한 회사는 고압선 지중화 작업을 위한 용역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으나 추진에 실패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와 시공업체 선정 및 비용 부담에 관한 협의가 결렬돼 끝내 지중화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수분양자는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분양대금반환과 위약금을 구하게 됩니다.  

하급심 판결은 엇갈렸습니다. 제주지방법원은 수분양자가 상대방의 지중화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달랐습니다. 광주고등법원은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수분양자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광주고등법원(제주) 2021. 12. 22. 선고 2020나10222 판결].  

제2심법원은 지중화 의무가 계약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불가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 수분양자가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주로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우선 수분양자가 분양계약을 체결한 주된 목적 또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체류 및 영주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고 지적했습니다. 분양계약에서 정한 약정해제 사유 중에 지중화 의무이행이라는 특약사항을 위반한 경우가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분양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특약사항 이행의무를 계약 목적 달성을 위한 주된 의무로 삼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둘째, 목적물인 부동산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로부터 소를 제기한 시점까지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분양자가 상대방이 특약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도 주목했습니다. 오히려 목적 부동산에 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후 이 부동산을 점유, 사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특약사항이 이행되지 않아서 수분양자가 체류하고 영주자격을 취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휴양 콘도미니엄은 관광객의 숙박과 휴양 등의 시설 이용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데 특약사항이 이행되지 않아서 수분양자가 부동산을 사용하지 못했다거나 분양회사에 피해나 불편함을 호소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수분양자가 뒤늦게 소를 제기한 사정을 보더라도 지중화 의무이행이 계약 목적 달성에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대법원 2022. 6. 16. 선고 2022다203804 판결).  

대법원은, 분양 대상 부동산이 속해 있는 건물 바로 인근 송전탑과 연결된 고압선(154,000 볼트)을 지하에 매립하기로 하는 특약사항이 분양계약서에 특별히 수기로 명시돼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아울러 분양계약의 목적물은 구체적인 동호수로 특정돼 있고, 더구나 이 사건 분양계약은 일반적인 콘도미니엄 분양계약과 달리 콘도미니엄의 한 호실의 공유 지분이 아니라 그 전부를 분양 받은 것으로 돼 있으며, 이에 따라 단독 소유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소유관계에서는 콘도미니엄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부동산의 사용, 수익은 물론 처분에서도 특정된 목적물이 지니는 의미가 가볍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부동산이 휴양 콘도미니엄에 해당해 관광객의 숙박과 휴양 등의 시설 이용에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이로써 당연하게 수분양자가 분양 받은 부동산 이외에 다른 호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수분양자의 휴양 콘도미니엄 분양계약 해제가 적법하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려면 당사자 일방이 이행하지 않은 채무가 주된 채무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부수적 채무불이행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 계약의 목적 달성에 있어 필요불가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채권자가 그 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했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주된 채무여야 한다고 반복해 설시해 왔습니다. 

주된 채무와 부수적 채무를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심급을 달리하며 법원의 결론이 계속 달라졌습니다. 대법원은 두 채무를 구별하는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 표명됐거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나타난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에 의해 결정하되 계약의 내용·목적·불이행의 결과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광주고등법원은, 수분양자가 대한민국에서 체류 및 영주 자격을 얻기 위해서 분양계약을 체결했다는 계약의 목적에 비중을 뒀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지중화 의무 불이행의 결과 부동산의 처분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나타난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를 판단할 때, 처분문서인 계약서에 수기로 특약사항을 기재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상대방의 주된 의무가 계약서에 누락되지 않도록 나아가 최대한 분명히 명시되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