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들 배치점수표 발표도 경영대·의대만 중시 수험생은 “지방근무 싫다” 건축·토목과 등 기피

수능 시기다. 언어(국어)와 외국어(영어)가 어려웠고 수리(수학)가 쉬웠다는 분석이다. 수리 점수가 높아져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이 약해졌다는 해석도 있다. 수능은 11월 매년 두 번째 목요일에 치러진다. 매년 보는 시험이지만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자녀의 고득점을 위해 매일 기도를 올리는 부모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 항로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무리한 일도 아니다. 20년 가까이 키워온 자식의 최대 행사가 바로 수능이기 때문이다.

피 말리는 수능은 끝났다. 이제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 남았다. 어떻게보면 더 피 말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능 점수가 발표되기 전인데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어느 대학 어느 과(전공)를 선택할지 벌써 고민에 빠졌다. 가채점 결과 수리시험을 망쳐 벌써부터 재수를 해야겠다는 부모와 수험생 얘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필자도 이번에 수능을 친 고3 수험생을 둔 아버지다. 현재 이과생인 딸의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수험생 부모 입장에서 보니 시험을 치는 과정이나 대학을 고르는 과정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선 시험과목을 한번 살펴봤다. 그동안 별 관심이 없다가 수능 때만 되면 설치는(?)게 아빠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정부가 그렇게 국·영·수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겠다고 하더니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수능은 총 500점이 만점이다. 국·영·수가 각각 100점, 사회(과학)탐구영역 200점(4과목으로 과목당 50점)이다. 점수 배점을 보면 결국 국·영·수로 대학을 가라는 것과 다름없다. 대학도 국·영·수 점수로 학생을 선발한다.

전공과 상관도 없다. 신문방송학과를 가려고 해도 국사학과를 가려고 해도 국·영·수를 잘해야 한다. 또 이해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필수 시험과목에 국사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탐구영역의 선택과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국의 역사를 몰라도 국사학과(물론 국사를 선택해야 하는 대학도 있다)를 가고 국문학과를 갈 수 있다. 정말 웃기는 나라다. 어떻게 자신의 역사를 모르고 대학에 들어가 국사를 연구하고, 역사적 배경을 모른 채 국문학을 논할 수 있다는 말인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과생은 물론 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다. 입시에 아무 소용이 없어서다. 대부분 문과생도 국사가 골치 아프다며 기피한다. 이런 걸 보면 뭔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글로벌한 시대에 살면 우리나라 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또 상위권이 경영대 의대에 집중되는 현상도 되풀이된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도 사교육업체들은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 배치기준표를 만들었다.

언론은 서울대 경영대 000점 의대 000점, 연세대 경영대 000점 의대 000점 등으로 경영대 의대만 주로 소개하고 있다. 나라를 먹여 살릴 이공계는 소외 대상이다. 정부와 언론은 심심할 때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바로 ‘ 이공계 우대’ 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이공계를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는지 자문(自問)할 필요가 있다.

올해 수능 응시자 67만 가운데 21% 정도만 이공계 학생들이 지원하는 수리
‘가’ 형 시험을 봤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결과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공계 인력을 수입해야 할 판이다. 조선 세계 1위, 반도체 세계 1위는 이공계 출신이 만든 작품이다. 건축·토목과는 지방근무가 많다고 기피하는 학과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우리를 먹여 살릴 미래산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김문권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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