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벤치마킹한 우리, ‘한국판 신기루’ 우려

지난달 28일 오후 1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행 대한항공 KE951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바이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 사태를 긴급 취재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두바이를 방문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카타르와 아부다비를 방문,  한국 건설업체들이 공사를 벌이고 있는 현장을 둘러본 후 잠깐 두바이에 들렸다. 삼성건설 등이 세계 최고층(818m·162층)으로 짓고 있는 버즈두바이 등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6월의 두바이는 뜨거웠지만 이미 여러 공사 현장에서는 크레인이 멈춰서 썰렁한 분위기였다.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부터는 디폴트(국가부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던 차에 두바이 정부나 다름없는 두바이월드가 11월25일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버렸다. 그리고는 26일부터 장기간 휴가에 들어갔다. 이슬람 명절 ‘이드 알-아드하’를 맞아 두바이 공무원들을 포함한 대부분 기업들이 12월5일까지 사무실을 닫았다. 일종의 ‘계획된 모라토리엄’이었다.

두바이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쇼핑몰에 들렸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두바이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쇼핑몰은 휴가철을 맞아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에미리트몰 2층의 아랍 전통음식점 ‘알 하랍’은 1000여석의 좌석이 꽉 찼다.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양고기는 한창 사람이 몰릴 때인 오후 9시가 되기도 전에 동났다.

두바이쇼크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벌컥 뒤집힌 것과 비교할 때 정작 두바이에는 ‘두바이 쇼크’가 없었다. 한국이 IMF 위기에 처했을 때와 오버랩됐다. 삭막한 사막처럼 텅 빈 두바이를 생각한 기자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당시 한국은 IMF 때 그야말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맛봤다. 은행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눈물의 비디오’가 아직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런 기억이 있는 한국 기자들에게 조용하기만 한 두바이를 사실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국 증시는 지난달 27일 75포인트나 빠지며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감돌았던 점을 감안할 때 더 그렇다.

그만큼 한국은 두바이를 너무 몰랐다. 두바이는 이슬람 국가다. 두바이 주민들은 두바이쇼크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나라지만 작은 뉴스로 처리할 정도였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 7개 토후국으로 이뤄진 UAE가 형제국인 두바이의 부도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UAE의 맏형격인 아부다비는 7000억달러에 달하는 국부펀드를 바탕으로 그동안 두바이가 손을 벌릴 때마다 도와줬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서다. 비록 두바이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충격을 받고 있지만 얼마든지 수습할 체력이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현재는 실패한 기획이지만 버즈두바이 버즈알아랍(호텔) 등 상상의 나래를 현실화시킨 두바이의 열정과 창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두바이가 아니라 한국이다. 한국은 몇 년 동안 두바이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두바이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송도국제도시, 새만금의 앞날이 염려스럽다. ‘한국판 신기루’만 만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송도의 경우 국제도시라는 이름만 걸어놓고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만 잔뜩 짓고 있다. 새만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새만금을 ‘한국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며 멋지게 꾸민 조감도만 달랑 들고 세계적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난리다.
한국은 아부다비와 같은 형제가 없다. 사막 위의 기적은 없었다. 한국이 제2의 두바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김문권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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