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출범한 노태우정부는 실질이야 어떻든 형식상으로는 건국이래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끌어 내긴 했지만 치솟는 전세,매매가를 잡아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떠안았다. 결국 사상 초유의 주택 200만호 건립계획이 마련됐고 분당을 비롯한 5개 신도시는 이 같은 정책의 산물이다.

하지만 외곽신도시만으로는 200만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다가구주택’이란 새로운 유형의 ‘단독주택’ 이다. 구분소유는 허용하지 않되, 하나의 건물에 19가구까지 지어 임대를 할 수 있게 한 다가구주택은 여러 모로 획기적인 단기 주택공급부족해결 방안이었다.

몇 달이면 뚝딱 지을수 있는데다 집주인으로서는 하나의 집을 잘게 쪼개 짭짤한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니 당시에는 투자상품으로서도 제격이었다. 서울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멋스런단독주택촌은 하루가 멀다하고 허물어지고그 자리를 빠른 속도로 다가구주택들이 채우게 된다.

정부로서도 이 다가구주택을 통해 어느 정도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나름 묘안이었던 셈이다.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가구주택의 확산과 함께 이른바 ‘마이카 붐’도 함께 불면서 주택가 골목마다 주차전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가구주택에도 나름 의무적으로 확보해 하는 주차장 공간이있긴 했지만 가구당 0.5대 수준에 불과한데다 그마저 차량 한 대당 필요한 면적 기준도없어서 사실상 주차장이 없는 다가구주택들이 태반이었다. 여기에 각 주택마다 벽과 벽이 서로 맞닿다시피 하다 보니 사생활 침해문제까지 생겨나는 등 곳곳에서 부작용을드러내기 시작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이 같은 문제들을 드러낸 다가구주택은 결국 서울시내 주택가 슬럼화의 주범이 된 것은 물론 20년이 흐른 지금 서울시내, 특히 강북권 대부분 지역을 재개발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단기 목표에 쫓겨불과 몇 년 후에 생길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근시안적 국가 정책이 낳은 대표적 실패사례로 전락한 셈이다.

정부는 최근 신규 주택공급으로 급등하는전세대책으로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도심지에 들어설 수 있는 20가구이상 150가구 미만의 소형 공동주택으로 원룸형(12∼30㎡ 이하), 기숙사형(7∼20㎡ 이하), 단지형 다세대(85㎡ 이하) 등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다. 늘고 있는 1인 가구 수요에맞춰 이들이 저렴한 값에 거주할 수 있는 주거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도시형 생활주택 정책은20년전의 ‘다가구주택’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최소한 가구당 1대 이상 주차장을 확보토록 의무화한 기존 주택과 달리 도시형 생활주택에서는 2가구, 또는 3가구당 1대를 주차할수 있는 공간만 두면 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서울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기존 주택의20%만 주차장을 지어도 도시형 생활주택 건립이 가능하도록 특례 규정까지 두기로 했다.이 같은 파격적인 주차장 특례규정은 도시형 생활주택이 주로 도심지 역세권에 들어서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리한 만큼 자동차 출퇴근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부나 서울시가 착각한 것이 있다.출퇴근 때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곧‘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시한 것이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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