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대금 불법행위 중 절반이 어음 관련

중소업체, 만성 자금난·할인수수료 고통

어음(bill).
‘ 발행하는 사람이 일정한 금전의 지급을약속하거나 또는 제3자에게 그 지급을 위탁하는 유가증권(두산 백과사전)’ . 어음은말 그대로 정해진 날짜에 돈을 지급하기로약속하는 증권이다. 과거부터 어음 없이는경제의 핏줄인 ‘돈’ 이 돌지 않을 정도로 어음은 한국의 경제 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결제 수단이다.

어음을 막지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신문의 뉴스 난을 장식하기도 하는 등 어음은 우리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그랬던 어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음의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물론 종이를 대신한 어음의 일종인 기업구매카드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대부분 대기업들은 일정 금액 이하는 현금으로 결제하는 관례가 자리 잡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자는 취지에서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어음이 사라지면기업을 운영할 만하다.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받은 어음을 할인하면서 안 내도 될 수수료를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어음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2월 주택공사 등 29개 산하기관 및 지방청의 1738개 공사현장에 대해 하도급 대금지급 실태를 점검한 결과 총 585건(위반업체 123개)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는데 이중 ‘불법어음 지급’ 이 296건(50.6%)으로나타났다. 불법어음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원도급자가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공사비를 현금으로 받고서도하도급업체에게는 어음으로 돈을 지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얘기다. 대형건설사들이 대부분인 원도급업자들이 말로만상생을 부르짖고 제 살길만 찾기에 급급한 나머지 하도급업체를 나 몰라라 내버려둔 꼴이다.

정부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 발주자 직불제’ 를 확대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원도급자가 2회 이상 하도급대금을 지연 지급할 경우, 발주자가 직접 하도급대금을 지급토록 하던것을 1회만 지연지급 하더라도 하도급자에게 직접지급(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제1항)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불법하도급 대금지급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위한 극단의 조치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4월 1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발주하는 모든 공사나 정부에서 조달하는 납품에 대해 직불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원 제안에 “각 부처에서 책임지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리뷰(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 부분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추가경정예산 집행의 성공 여부도 좌우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어음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깨닫고 있다는 말이다. 대형건설사들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

대한건설협회는 “대금지급 기한 위반 등의 위법행위를 한 원도급업체는 조사대상(3262개)의 3.8%에 불과한 데도 이를 막기위해 공사대금 직불제를 도입하려는 것은건설사들에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원도급자의 불법은 하도급자들이 신고해야만 드러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원도급자의 횡포에 말 못하고 있는 수많은하도급업체들의 속이 멍들어 간다.

이런 실정을 잘 아는 건설협회가 애써이를 외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하도급업체들이 현장근로자나 자재ㆍ장비업체들에게 대금을 지급했는지 여부를 발주처인 정부가 직접 확인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다소 억지스런 논리도 갖다 붙여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원도급자와 하도급업자가 서로 신뢰하고 유기적인 협조를 하는 것만이 부실공사를 막고,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