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뉴타운 완료되면 전체 주택의 70~80%는 ‘성냥갑’

  폐쇄된 주거공간 한계… ‘2만달러’ 걸맞는 정책 전환을



얼마 전 새벽녘에 경기 하남시의 높은 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골프장에 갔다.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때리는 늦가을 새벽 날씨였지만 먼동이 트기 전 아래에 펼쳐진 서울 동쪽의 야경은 추위를 감수하고 남음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부분이 한참 달콤한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이것도 행운이구나’ 하는 상념도 떠올랐다.

하지만 동이 트기 시작해 주변이 밝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새벽녘의 황홀경’ 은 단지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1시간반 전 환상적인 분위기였던 서울 야경은 실제론 숨막히게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숲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침이 되면서 본 모습을 드러낸 서울의 아파트촌은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저렇게 천편일률처럼 만든 아파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필자 자신도 그곳에서 살지만 문득 ‘ 아파트 무덤 같다’ 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강연에서 “현재 계획된 서울 강북 뉴타운이 모두 완료되면 서울의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70~80%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집 10채 중 7~8채가 성냥갑을 거꾸로 세워놓은 아파트라는 얘기다.

지난 20여 년 간 아파트는 우리의 대표적인 주거 문화이자 부의 상징이었다. 1980년 대 말 이후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아파트는 기존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은 물론이고, 서울 수도권 일대의 나대지를 하나둘씩 삼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강남권과 목동 과천 분당 등 주요 아파트 밀집지역의 집값이 폭등하면서 ‘버블 세븐’ 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평수를 늘린 새 아파트로 다시 짓는 재건축이 유행하면서 실평수가 10평(33㎡)도 안 되는 강남ㆍ송파구의 구식 아파트 값이 10억원을 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주택사업자와 건설사들은 서울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조그만 공간이라도 찾으면 땅따먹기 경쟁을 벌였다.

작은 공간에 여러 집이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는 우리처럼 선진국을 향해 도약하는 개발도상 국가의 주택 형태로는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ㆍ복지국가로 진입하게 되면 주거에 대한 개념은 변한다.

아파트는 뛰어난 공간 효율성과 경제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자연 및 이웃과의 단절을 피하기 어렵다. 예전 이맘 때면 붉은 홍시가 수북이 매달려 있는 시골 감나무의 추억은 고사하고, 아래층을 의식해 함부로 뛰어 다닐 수도 없는 폐쇄된 주거공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바로 아파트의 한계다.

그럼에도 주택 건설 업체들은 아파트가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여유 땅만 생기면 이 성냥갑 집을 계속 지어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수도권의 아파트는 거의 포화 상태에 도달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파주, 동탄, 검단 등 2기 신도시들의 분양이 전과 같이 않은 지 이미 오래됐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이들 지역에서 지어진 신규 아파트는 상당 부분이 미분양으로 남아있다.더구나 앞으로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인구 증가가 급격히 감소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2기 신도시는 그야말로 노인들의 실버타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정부의 아파트 공급 대책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의 주택은 단순거주가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당장 부족한 수요를 메우기 위해 성냥갑 주택을 마구잡이로 공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요에 맞춰 질 높은 주거 공간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엄청난 지방의 아파트들이 슬럼화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송영웅 한국일보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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