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진입장벽 허문다지만 전문업체 피해 불보듯
한시적 보호 필요…규제해제가 최고의 선 아니다


현정부가 국내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추진해온 건설산업 선진화 방안이 시행하기도 전에 적잖은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21일 국토해양부가 입법예고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이 개정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사는 전문건설사에게만 공사 하도급을 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다른종합건설사에도 하도급을 맡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는 포스코건설(종합건설업체)이 수주한 공사를 전문건설업체에만 하도급을 줘야 하는데 앞으로는 경쟁사인SK건설에게도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현행 법규는 종합건설사가 단일 공종의 전문공사는 원도급 받을 수 없게 하고있지만 개정안은 종합업체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도로재포장 같은 공사는 지금까지 도로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건설업체만 원도급을 받아 공사를 하지만 앞으로는 대형 종합건설사도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안을 만들면서 종합건설사는 전문건설업체의 영역에 들어올수 있도록 하면서 소규모 전문건설업체들도 종합건설사만이 했던 원도급에 참여할수 있는 길도 함께 열어 놓았다. 현재 전문건설업체는 2개 이상의 공종으로 구성된 복합공사는 원도급 받을 수 없지만 앞으로는 전문건설사도 복합공사 원도급을 받을수 있도록 했다.

겉으로 보면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간에 막혀있던 진입 장벽의 문턱을 양쪽에 모두 개방해 건설산업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하지만 자세히 들어다 보면 영세 전문건설사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수 있다. 국토부는 ‘이번 대책은 발주자가공사 특성에 따라 적정한 공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한다’ 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복합공사 수주전에서 전문건설업체들이 종합건설업체와의 경쟁에서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발주자들은 사후처리나 브랜드 등을 감안해 규모가 큰 종합건설사를 택할 것이 뻔하다. 또한 원도급입찰에 참여하려면 원도급 공사 실적이 필요한데 전문건설업체의 경우 공사 실적이 전무하다. 따라서 전문건설업체는 원도급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 양쪽 모두에 상대방의 업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지만 결국 승자는 종합건설업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전문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종합건설업체들은 하도급에 참여할 수 없도록 일정부분 업역을 제한하는 게 생존에 더욱 유리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금융권에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해왔다. 그런 정부가 건설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영세한 전문건설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마저 대형종합건설사들에게 열어 제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 건설산업기본법이 입법예고 되자 전문건설업체들은 “이제 영세 전문업체들은 다 죽는다” “종합건설업을 하면 전 업종을 다 할 수 있는데 굳이 전문건설업 면허를 낼 필요가 있나. 모두 다 면허를 정부에 반납하자”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현 정부가 발전을 가로 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 한일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규제 해제가 최고의 선(善)은 아니다. 우리 경제에는 아직도 설익어서 완전한 경쟁이 이뤄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보호해야 할 약자들이 있다.

섣부른 규제 해제는 이제 막 새순을 피우려하는 어린 싹을 죽일 수도 있다. 정부나 각종 위원회는 탁상공론만 할 게 아니라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대의 명분이 좋다고 반드시 결과까지 좋으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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