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로 수요자들 움직이고 있으나 불확실성 안사라져 경기전망도 불투명

정부가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양도소득세 면제 및 감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의 조치를 단행한 이후 꽁꽁 얼었던 주택시장에 조금씩 훈기가 돌고 있다. 지난 주 양도세 및 취득ㆍ등록세 인하 수혜지역인 용인과 고양시의 몇몇 분양 모델하우스에는 100만~300만원을 내고 미분양을 잡는 가계약자가 크게 늘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찾는 이 없이 외면 받았던 상황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용인과 일산의 모델하우스를 가보니 평소의 10배가 넘는 내방객이 찾아오고, 분양정보를 묻는 전화도 잇달았다. 세제 혜택에 분양가 상한제까지 폐지돼 ‘이제 더 이상 싼 아파트가 나오기는 힘들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그간 매수를 미뤘던 수요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아파트 시가도 올해 들어 송파구 잠실과 과천, 용인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완화 조치와 제2 롯데월드 건립, 서울시의 초고층 재건축 허용 등의 호재에 저금리 기조가 겹치면서 잠실과 압구정동의 재건축 아파트는 올해 들어 2억원이나 호가가 오른 곳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근 판교 중대형 아파트의 분양 히트와 임대가 25억원의 한남동 ‘더 힐’ 분양이 성황리에 마감되면서 주택 분양 업계에선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판단은 다소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연초의 이런 해빙 무드는 지난 1년여 간의 과도한 지가 하락에 따라 급매물이 소화되고, 정부의 규제 해제 효과와 저금리 상태가 만들어낸 일시적 상승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최근 국내 주택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주택 자체의 수요나 공급의 원리보다는 외풍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주택시장이 가격보다 오히려 금리, 주가, 환율 등 국내외 경기 동향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강남 3구의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주택관련 규제를 풀었다. 따라서 ‘규제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죽었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장에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앞으로의 경기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 상황은 다시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유럽 국가 상당수가 디폴트(국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유럽발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가하면, 지난주부턴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국유화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경제의 난치병’인 GM과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업체들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등 대외 상황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국내 상황도 심각하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연일 팔면서 주가는 1000선 지지를 위협 받고, 환율은 1,500원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금융시장에 다시 위기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일각에서 ‘3월 위기설’이 다시 불거지는 등 국내 경제가 위태롭기 그지없다. 가계 부채 증가도 주택시장에는 직격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대출과 외상구매 등을 합친 가계신용 잔액은 688조2,000억원에 달한다. 1년 전과 비교해 57조6,000억원(9.1%)이나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가계 신용 잔액을 전체 가구 수로 나눈 가구당 부채도 4,128만원으로 1년 사이 286만원이 늘었다. ‘가계발 금융위기’의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이처럼 난마처럼 얽힌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 주택시장이 홀로 살아나기는 힘들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실타래를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 풀기가 버겁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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