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열풍에 취업 스펙 위해 아이들 공부에 매몰

정두환 서울경제 부동산차장며칠전 주말. 아내에게 신년이라고 대학원 시절 후배가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아내가 한참의 이런저런 통화 후 전화를 끊더니 한숨을 쉬며 묻는다. “우리 애들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거 맞을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대치동으로 이사를 했다는 그 후배 왈 “이사온 것만으로도 아이가 달라지더라. ‘그냥’다른 애들 가는 학원 따라 보낸 것 뿐인데 아이 성적이 쑥 올라갔어. 선배도 이사와” “무슨 학원에 보내는데?” “그냥 다른 애들처럼 영어 2개하고 수학, 과학 밖에 없어” “…” 후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할아버지의 재력(財力)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자식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조건’이다. 한달 학원비만으로 100만원을 훌쩍 넘고 방학이면 또 이런 저런 특강까지 들어야 하니 웬만한 샐러리맨 월급으론 불감당이다. 여기에 대학 가는 절차는 왜 그리 까다롭고 복잡할까. 원점수는 무엇이고 또 표준점수는 뭔지. 여기에 ‘수시모집’에 ‘정시모집’, ‘가군’ ‘나군’ ‘다군’은 또 뭔지. 아직 두 아들이 초등학생인 필자 부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제대로 안된다. 그나마 다행히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조건 하나는 충족시켰다는 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치러서 자식을 대학 보내고 졸업시켰지만 사회의 현실은 참 암담하기 그지없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졸자 3명중 2명이 실질적인 실업자 상태라고 한다. 공부를 못해서 취직을 못했다면 모를까, 요즘 웬만한 대학생들의 이력서를 보면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한마디로 화려하기만 한 ‘스펙(Spec)’이다. 해외연수는 기본이요 복수전공, 이런 저런 자격증에, 토익 900점은 기본이다. 신입사원 모집 원서를 받아본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이런 친구가 왜 우리 회사에 오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시화공단에서 조그만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처남이 항상 하는 말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 박한 월급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일 좀 배울만 하면 관둔다는 푸념이다. 한쪽에선 취직을 못한 실업자가 넘쳐서 난리라는데 다른 한쪽에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학만 해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전교 열손가락에 들어도 못가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어떤 대학은 학생을 ‘선착순’으로 뽑는 곳도 있으니….

정부가 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내세운 게 바로 ‘영어’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면 늦다고 아예 초등학교나 심지어는 유치원 때부터 자녀 영어 교육에 올인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영어시간 풍경이다. 파란 눈의 원어민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한다. “Hi!”. 40명 남짓한 아이들도 합창을 하듯 목소리 높여 대답한다. “Hi!”그런데 수업이 흐르면서 교실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하나 둘씩 입을 닫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어느덧 대화는 몇몇 학생과 교사가 나누는 미니 수업으로 변해있다. 나머지 아이들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교사와 유창한 영어로 대답하는 몇몇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자기들끼리 잡담에 빠져들어 버린다. 물론 유창한 한국어로….

2008년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의 과학자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수상 강연에서 했던 첫마디는 “I can’t speak English”였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어를 못한다고 과학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Orange’가 ‘오렌지’면 어떻고 ‘어륀지’면 또 어떤가. 조기 영어, 일류대학이라는 목표에 매몰돼 우리 아이들은 그 시기에 정작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필자 역시 스키, 수영, 체험학습 등 온갖 놀거리로만 가득찬 두 초등학생 아들의 방학계획표를 보면서 “내가 정말 두 아들을 잘 키우고 있는걸까”라는 걱정을 떨쳐 버리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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