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대기업(갑)에 꼼짝 못하던 중소기업들(을)이 실력행사를 통해 납품가를 올려 받게 됐고, 관청도 민간에 예전처럼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곳이 많아졌다는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일부 휴대폰 부품 업체들이 계약기간과 물량 보장 등 납품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하는 바람에 생산라인 일부를 멈춰야 했다. 3월에는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주물업체들이 고철 값 상승에 따른 납품가 인상을 주장하며 사흘간 납품거부 운동을 벌였다. 우리 업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레미콘과 아스콘 업체들이 잇따라 생산과 납품 중단 등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많은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되기도했다.

원자재와 유가 상승만이 원인 아니다

‘을들의 반란’의 원인으로 원자재 값 폭등과 유가 상승추세가 꼽히고 있다. 납품가는 묶여있는데 원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니 어떤 을들이 예전과 같은 조건으로 납품을 계속 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불과 얼마 전 10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 조만간 130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며 베이징 올림픽 특수 등으로 중국에서 시작됐던 국제 원자재 값은 중국이 이번 대지진 피해 복구사업에 본격 착수하면 다시 한 번 요동을 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을의 반란’이 오직 원자재 값과 유가 상승에서만 비롯된 것이라는 진단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는 표면적 원인은 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회있을 때마다 언급해온 것처럼 대기업이 진정으로 중소기업을 상생관계의 협력 파트너,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놓여있는 사업적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원인일 것이다. ‘이익을 볼 때도 같이 보고, 손해를 볼 때도 같이 보는 것’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일 터인데, 이익은 자신이 가져가고, 손해는 을에게 넘기는 행태를 보이는 갑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공정거래위 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을(전문건설업체)에게 지급해야 할 공사비를 아파트로 대물결제하는 것도 모자라 가족이 운영하는 외제자동차를 강매케하여 처리하는 갑(일반건설업체)과 같은 업체가 한 둘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것이다.

생태학적 기업관 가져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갈등 해결을 위해 양자가 납품가격 등 제품생산에 관한 장기적 계획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갑이 납품단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통보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을의 이익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대증적 방안도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갑들이 지금이야말로 ‘을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생태학적 기업관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들판에서 초식동물이 사라지면 육식동물도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린 법 아닌가? 그리고, 누구나 평생 갑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갑이지만 저기서는 을이 되는 것이 비즈니스, 아니 삶의 본질 아니던가? 을이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하면 갑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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