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20일 오전9시경 전남 영암군 삼호읍 대불국가산업단지내 미포사거리에 한국전력영암지점 전력공급팀과 하청업체 직원 10여명이 모여들었다. 굴착기와 기중기등 우중임에도 나타났다. 비오는날에는 감전의 위험이 높아가급적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이들은 대불산단내의 대한세라믹스쪽의 16m높이 전봇대를 옮기기 위해 이례적으로 10여분간 작업안전회의까지 했다.

곧 굴착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보도블럭을 파헤치자 직경 36cm의 전봇대 밑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들은 전봇대 이설로 공장가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무정전 시스템을 가동한 뒤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끊었고 이어 기중기로 전봇대를 들어올려 하천쪽으로 3m가량 옮기는 작업을 5시간만에 마무리 했다.

이전봇대는 1996년 대불산단이 완공될때 들어선 것으로 2003년부터 산단입주업체들이 옮겨달라는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그러던중 2006년 대불산단을 방문했던 이명박대통령당선자의 눈에 띄었다가지난 1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에서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됐다.

이명박대통령당선자는 지난 18일 인수위에서“대형트럭이 선박블럭을 싣고 나가서 커브를 틀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전신주가 있어서 힘들더라. 그것이 몇 달이 지나도록 옮겨지지 않아 알아보니 전라남도도청은 권한이 없고 목포시도 안된다고 하고산업자원부도 불가하다 하는 등 서로 미루다 보니 이 전신주 하나 옮기지 못했다”고지적했다.

2006년 9월 이명박 당선자가 대불산단을방문했을때 처음으로 전봇대 이설문제를제기했던 블럭제조업체인 (주)유일의 유인숙대표는“길을 막고 있는 전봇대 한두개를옮겨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반시설을 전반적으로 정비해 단지내 모든차량이 방해를받지 않고 운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대표가 제기했던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불산단에는 전봇대 한두개가 아니라가로등·가로수정비·붕괴위험이 있는 교량, 비현실적인 도로교통법규 등 풀어야 할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불산단 뿐 아니라우리경제 구석구석에 기업의 경제활동을가로막고 투자의욕을 꺾는 규제의 전봇대가 수없이 널려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규제건수는 총5167건에 이른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현 정부가 기획단을 만들고 규제총량제를 도입했지만기업이 느끼는 규제 체감도는 달라진 게 없다”며“공무원 수를 줄이고, 작은 정부로 가지 않는 한 규제가 줄어들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규제가 기업 투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고‘규제와의 전쟁’을선포했다. 새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의하나로 규제개혁을 꼭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들이 저마다 집권 초기에 규제 철폐를 외쳤으나 나아진 것은 별로없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박사는“그동안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규제개혁을 외치다 보니 달라진 게 없다”며“현장에 나가서 직접 인·허가 과정을체험해본다든지 기업 입장에 서서 규제를바라봐야만 제대로 된 개혁이 가능하다”고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는 곳곳에 널려있는 규제의 전봇대를 찾아내 확실하게뽑아내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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