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학 MBA연수과정서 경험한 ‘협상’ 강좌   한국학생들의 ‘모 아니면 도’ 식 도출방식 씁쓸
김문권 한국경제신문 차장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에서 1년 연수할 때의 일이다. 보통 기자들이 연수를 가면 공부도 하지만 여행도 많이 다니고 골프도 싱글 수준이 되어 돌아온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기자 연차에 비해 엄청 일찍 연수를 갔다. 33살이었으니 아마 국내 언론인 가운데 가장 빠르지 않나 싶다. 골프도 OB가 없는 미국에서 머리를 올려서 아직도 형편없다.

아무튼 한국 기자로서 오리건주립대학에서 연수한 것은 필자가 처음이다. 코스에 저널리즘이 없어 MBA 2년차 과정을 들었다. 과정은 거창하게도 APIM(Advanced Program Internatioal Manegement)였다. MBA 정식 코스를 밟는 것이 아니어서 지도교수가 교수들에게 필자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부담은 없었다. 일종의 청강생이어서 리포트를 내지 않아도 되고 강의를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기별로 3과목 정도 신청해 강의를 들었다. 10년이 훨씬 지났는데 유독 협상(negotiation)이라는 강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담당 교수는 강의실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강의해 캠퍼스에서 유명했다.

이 교수가 흥미로운 강의를 했다. 학생 40여명을 2명씩 짝을 짓게 한 뒤 둘이 협상을 하도록 했다. 과제는 한명은 자신이 읽은 책을 친구에게 팔고 한명은 그 책을 사는 것이다. 교수는 ‘파는 자’와 ‘사는 자’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파는 자’는 일정금액 이상을 받고, ‘사는 자’는 일정 금액 이하로 사는 것이다. ‘네고’를 잘해 최대의 이익을 얻으라는 과제다. ‘파는 자’ 역할을 맡은 필자는 태국 출신 여학생에게 책을 팔았는데 여학생이 하도 집요하게 나오는 바람에 교수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그 여학생은 교수가 내준 금액 이하로 헌책을 구입했다.

각 팀이 협상을 한 다음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나와 어떻게 네고를 하고 어떤 논리를 내세웠는지를 설명했는데 흥미로운 사건이 생겼다. 대부분은 교수가 제시한 금액에 서로 근접했다. 그렇지만 한국 학생들과 네고를 한 그룹은 특이한 결과가 많았다. 우선 한 팀은 협상이 결렬됐다. 교수가 제시한 금액을 고수하기 위해 끝까지 버틴 한국 학생 때문이다. 그 학생은 논리 정연한 이유도 없었다. 그저 ‘원안’을 고집했다. 교수가 제시한 원안을 고수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했단다. 교수는 협상 능력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논리를 보자고 한 것인데 평행선을 달리는 남북관계처럼 딜(deal)은 실패했다. 결국 둘 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다른 한 팀은 학생 모두를 놀라게 했다. ‘파는 자’ 쪽인 한국 남학생이 낀 그룹이었는데 상대방에게 ‘free’ 즉 공짜로 준 것이다. 논리도 단순했다. “친구에게 내가 쓴 책을 팔 수는 없다. 더 이상 나에게 쓸모가 없는데 친구를 위해서는 그냥 줄 수 있다”고 교수에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교수는 무척 당황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전체 평가를 하면서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겠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이 강의를 듣고 나서 나도 혼란스러웠다. 물론 교수에게 튀어 보이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MBA에서 협상 과목을 개설한 것은 우리 삶 자체가 협상을 빼고 살 수 없기 때문일게다. 네고능력은 치열한 비즈니스 시장에서 살아남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의실이지만 한국 학생들 대부분이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로 일관했다. 세종시를 여기에 대입하면 어떨까. 원안만 고집하는 황당한 논리가 아닌 정말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전략을 가지고 나온다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텐데....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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