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섬진강이 흐르는 지리산자락에 둥지

시문학반, 그림반 등 10개 강좌개설

귀농시인, 사진작가, 화가 등이 강사

슬로시티 악양과 어울리는 아카데미





지리산학교를 아십니까? 포용과 베풂의 산,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자락에 시인, 화가, 도예가, 사진작가 등이 2009년 5월 지역민을 위해 만든 문화ㆍ예술 아카데미가 바로 그곳이다. 박경리 여사의 대하소설《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 댁 인근에 자리 잡은 지리산학교는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꾼 사랑채와 안채가 교사(校舍)의 전부이다. 지리산이 병풍을 쳐주고 드넓은 평사리 들녘 옆으로 섬진강 줄기가 그림처럼 흐르는 곳에서 공무원, 주부, 농부 등이 주1회 정해진 요일 오후시간에 수업을 받는다. 하동은 물론 구례, 남원, 광양, 광주에서 출석하는 ‘학생’도 많다.


강좌는 그림반, 시문학반, 사진반, 도자기반, 목공예반, 기타반, 숲길걷기반, 퀼트(바느질)반, 천연염색반, 옻칠반 등 10개로 다양하다. 수강료는 3개월에 15만 원이며 매월 4째 주 토요일 오후5시에는 공개강좌도 열린다. 강사진이 화려한데 모두 지리산이 좋아 하동으로 내려와 10년 이상씩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진작가 이창수씨(50·교장), 시인 박남준(53) 이원규씨(48), 화가 오치근씨(40), 산악인 남난희씨(53), 도예가 류대원씨(41), 목공예가 김용희씨(44)등이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이 교장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국민일보, 월간중앙 등에서 16년간 사진기자로 일하다 1999년 12월 지리산으로 내려갔다. 악양의 지리산 자락, 형제봉 가는 중턱 1만3천 평의 땅에 터전을 잡았다. 봄에는 녹차, 여름에는 매실, 가을에는 감, 겨울에는 곶감농사를 지으면서 지리산학교 일을 본다. 일주일에 하루는 순천대 사진예술학과에 출강하는 이 교장은 쉴 틈 없이 바쁜 사람이지만 2009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악양을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하는데도 추진위 부위원장으로 크게 기여했다. 서울에서 교사 생활하던 부인도 지리산학교 퀼트반 강사여서 자연 속에서 느림의 여유와 행복을 느끼며 부창부수하고 있다.

지리산의 야생차와 산야초에 일가견이 생긴 이 교장은 ‘금생춘(今生春)’이란 발효차도 만들었다. 그는 “지리산학교는 비영리로 운영되므로 1명이라도 신청하면 그 강좌를 개강한다.” 면서 “지역민들과 우리 같은 귀농인들이 힘을 합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문학반을 맡고 있는 박남준 씨는 중견시인이다. 박씨는 2003년 9월 평사리 끝동네 동매마을로 오기 전 전주 인근의 모악산 외딴집에서 13년간이나 홀로 산중생활을 하면서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동매산방이라고 이름 지은 그의 집은 양철지붕을 얹은 10여 평짜리 토담집이다. 사후에 남에게 신세지지 않기 위해 관 값으로 쓸 200만 원만 통장에 넣어두고 조금 벌어 조금 쓰는 것이 그의 생활철학이다. 박시인은 “산천경개가 좋을 뿐 아니라 지리산사람들의 인정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운동단체인 ‘섬진강과 지리산사람들’ 대표인 박시인은 2004년 수경, 도법 스님 등과 지리산 1500리를 걷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기도 했다. 지리산시인으로 불리는 이원규 씨는 1998년 중앙지 기자직을 그만두고 지리산에 묻혀 살았다.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로 끝나는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산꾼들에게 인기가 있다. 숲길걷기반은 유명한 산악인 남난희씨(53)가 맡고 있는데 한번 산행에 서너 시간 걸리기 때문에 격주로 만나 등산하고 있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에 안긴 지리산학교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설 희 관 (언론인·시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