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이미 신뢰 잃었던 팀

     불투명한 세계경제 속 시장 참여자들은 납득할까



현 정부가 출범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다. 미국의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의 원화 환율이 계속 상승(달러 가치 상승, 원화 가치 하락)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제2의 외환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국내에 확산되며 시장 참여자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런데 외환시장을 잠재우기 위해 내뱉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외환시장 장작더미에 기름을 퍼부었다.

대통령은 “IMF가 돈 빌려 가라고 권유했는데 한국 경제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거절했다고 말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러자 다음날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난리가 났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환율은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국의 경제위기가 구체화됐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대통령이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한 말이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

물론 대통령이 이런 결과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해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국민들과 외국에 자랑스럽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냉혹했다. 아니 시장이 좀 더 분석적이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환율이 급등한 사연을 살펴보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한번 투자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외국 투자자들은 대통령의 의도에는 별관심이 없었고 ‘IMF가 한국 보고 돈 빌려가라고 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했다. 대통령이 강조하려 했던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안중에 없었다는 말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IMF가 한국에 그런 요청을 했다는 사실과 이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임을 간파했다. 즉 대통령이 아무리 시장을 향해 ‘한국은 문제없어. 돈 안 빌려도 돼’라고 외쳐봤자 외국인들은 콧방귀도 안 뀐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외국 투자자가 IMF와 MB 발언 가운데 어디에 가중치를 두겠냐고 반문했다. 더 심각한 것은, IMF는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말하는 바람에 IMF의 입장도 곤란해진 점이다. 서프라이즈 경제학(조준현 지음)이란 책에서는 이를 두고 대부업체 광고에서 봉식이가 대출을 받으려고 대출 조회를 했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져 망신을 당한 꼴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환율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강만수 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이었다. 당시 강 장관은 수출 확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폈다. 고환율 정책은 국제 유가 상승과 겹치면서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기러기 아빠들과 수입업체들은 강 장관의 고환율 정책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장관과 호흡을 맞추던 최중경 주(駐) 필리핀 대사가 경제수석으로 청와대로 컴백하게 된다. 최 내정자는 기획재정부 1차관에서 4개월 만에 물러나 2008년 9월부터 필리핀 대사로 일해 왔다. 여기에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중수 전 OECD 대사도 한국은행 총재 자리에 앉았다. 이로써 ‘강만수-최중경-김중수’로 이어지는 강만수 사단이 화려하게 부활하게 됐다. 고환율을 바탕으로 한 고성장정책이 경제팀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고환율 정책을 쓰며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고갔던 정책 라인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이들의 복귀를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 경제가 불투명한 가운데 이미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책팀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맡겨도 될지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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