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준농림지 아파트들에 계획도시 기능마비

필자는 유독 ‘신도시’와 많은 인연을 맺고 지냈다. 굳이 ‘부동산기자’라는 직업 때문만은 아니다. 1994년 부모님이 분당의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2년여를 살았고, 결혼과 함께 첫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도 분당신도시였다. 첫번째 내집을 마련한 곳 역시 그곳이었고 직장이 멀어서 고민 끝에 옮긴 곳이 일산신도시였다. 지금은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곳에 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작으나마 한 채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도 역시 일산이 소재지다. 이만하면 나름대로 신도시와는 꽤 인연이 깊은 셈이다.

1980년대말 살인적인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 턱없이 부족한 서울 등 수도권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택 200만호 공급계획으로 탄생한 5개 1기신도시는 이러저러한 비판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수도권 주택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었던 획기적인 정책의 산물임은 분명하다. 신도시 입주 이후 10년간은 우리 주택시장이 가장 오랫동안 평온을 유지했던 기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신도시’는 하나의 자부심이었다. 필자의 아내 역시 조그만 다세대주택이었지만 그곳이 ‘분당신도시’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것은 따져 보지도 않고 신혼집으로 결정했을 정도였다.

입주가 이뤄진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신도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여전히 ‘신도시’로 불리지만 20년 가까이 흐르며 시간의 무게를 어쩌지 못한 탓이다.

1기 신도시의 위기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여전히 신도시내 주거환경은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지만 낡고 오래된 개별 건물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입주민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워낙 단기간에 급하게 대규모 아파트를 지은 데서 오는 시공상의 문제점도 한몫하고 있다.

IMF 이후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도 간접적으로 신도시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요인이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논밭에 우후죽순 들어선 대규모 준농림지 아파트들이 바로 그 주범이다. 신도시에 기대 이렇다할 기반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아파트들이 신도시를 둘러싸다 보니 사실상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하는 교통망은 물론이고 신도시내 기반시설조차 포화상태로 신음하고 있다. 계획도시가 비계획도시에 포위돼 기능적으로 마비를 겪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판교, 위례 등 참여정부가 주택공급확대의 일환으로 내놓은 2기신도시 역시 간접적으로는 신도시의 위상을 흔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신도시의 위기는 주택거래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바로 분당과 일산이다. 거래 단절과 가격하락이 비단 1기신도시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분당과 일산에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세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수요자들은 주변 지역의 새 아파트로 몰릴 뿐 신도시에는 매수 문의조차 거의 없다는 것이 일선 중개업계의 전언이다. 섣불리 단정하긴 힘들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벌써 ‘탈(脫) 신도시’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란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신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노화를 겪고 있지만 해결책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 소형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추가부담금 문제로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중고층 아파트여서 재건축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문제는 이처럼 신도시는 늙어가고 있는데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은 물론이고 별다른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늙어버린 신도시를 단지 아파트 단지 노후화로 인식하고 이를 방치할 경우 머지 않은 미래에 이 거대한 신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몇 배나 비싼 사회·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에 정부나 지자체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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