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한국최초 다큐멘터리스트 박종우씨 차마고도 염정마을 세계최초로 알려

지역노출시켜 피해입힐까 딜레마도 최근엔 비무장지대 기록물제작 몰두

◇ 한국최초의 다큐멘터리스트 박종우씨가 2008년 갠지스강의 발원지인 북인도 히말라야 협곡에서 취재하고 있다.
사진작가 박종우씨(52)에게는 ‘한국최초의 다큐멘터리스트’ ‘히말라야의 보헤미안’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1987년부터 히말라야 서쪽 끝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부터 미얀마와 중국의 윈난성 국경에 이르는 3,000여㎞를 종횡무진하며 설산의 풍광과 소수민족의 사라져가는 풍습 등을 렌즈에 담았다.

박씨는 2004년 중국여행 중 헌책방에 걸려있던 누런 사진을 보고 히말라야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존재를 알았다.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고 간 교역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가슴은 뛰었다. 이듬해 중국 윈난성 서북부와 티베트 접경지역인 옌징으로 서둘러 갔다. 그러나 염정(鹽井)마을을 촬영하던 중 말수레의 소금가마니에 받혀 40여m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나무에 걸려 살아났으나 1억 원짜리 카메라와 장비가 박살났다. 찍어놓은 것만 챙겨서 귀국했다. KBS TV가 방영한 「티베트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차마고도 염정마을을 세계최초로 알린 다큐멘터리가 됐으며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으로 유럽의 정규 다큐채널인 프랑스의 아르떼 TV에 판매됐다.

히말라야 취재에 탄력이 붙은 박씨는 2006년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 2부작, 2008년 「사향지로」 2부작 등 차마고도 시리즈를 SBS TV를 통해 선보였다. 이 밖에도 「신의 산, 에베레스트에 서다」 등 산악다큐와 「물위를 떠도는 바다집시」「마지막 불의 전설」「최후의 샹그릴라」 등 소수민족의 풍습과 애환을 담은 빼어난 작품을 잇달아 발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다집시」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의 해양유목민 모켄족의 삶을 취재한 것이다. 「마지막 불…」은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이 불을 숭배하는 제의(祭儀)를 2년에 걸쳐 찍은 것이다. 「최후의 샹그릴라」는 히말라야 쿤룬산맥 서쪽 끝에 있는 중국 운남성의 작은 마을 샹그릴라(香格里拉)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오지만을 탐사하는 그에게 직업적인 딜레마도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이 아쉬워 기록으로 남기지만 소수민족의 삶이 노출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티베트 옌징의 소금밭만 하더라도 현지의 중국인도 잘 모르던 곳이었으나 최근에는 도로가 포장되고 온천단지까지 들어서 관광지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7년 2월에는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남극운석탐사대원으로 참여했다. 끝없는 탐사와 도전정신으로 죽음의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미국동물원 우리에서 호랑이에 물렸으며 갈라파고스 섬에서는 이구아나에게,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사파리에서는 표범에게 상처를 입었다. 지금까지 100여 개국의 오지와 극지만을 골라 카메라 탐사에 나서느라 1년 중 150일~200일은 외국에 나가있던 박씨가 최근에는 국내에만 머물러있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방부가 기획한 비무장지대(DMZ) 종합기록물제작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 248㎞를 남방한계선을 따라 걸으며 남북의 대치현장, 전쟁의 상흔, 자연생태계 등을 사진과 비디오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서울성곽도 비디오에 담았다. 독립프로덕션 ‘인디비전’을 운영중인 그는 SBS의 「TV동물농장」을 4년넘게 외주제작했고, KBS TV의 「몽골리안루트」 6부작도 제작했다. 박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방과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11년간 일했다. 지난해 「히말라야 모노그래프」 사진전을 열었고 첫번째 사진집 「히말라야-20년의 오디세이」를 출간했다. 히말라야와 소수민족, 극·오지 탐사에서 한반도 비무장지대로 바뀐 그의 카메라 앵글이 어떤 장면들을 포착해서 보여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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