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어머니 대표시인’심순덕씨가 춘천호반에서 시와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다.‘어머니 대표시인’심순덕씨의 사모곡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못다한 효심담은 ‘참회’ 많은 이 공감 
각계서 자료로 활용, 모임초대 잇달아

어머니는 우리네 인생의 영원한 테마이다. 수필가 고 피천득 선생은 ‘엄마’라는 글에서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중략)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모친을 평생 그리워했다. 신경숙씨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120만 독자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일깨우면서 심금을 울렸다. 이 책은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15개국의 유명출판사와 번역판권계약을 맺었다. 극작가 이윤택씨가 모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희곡으로 쓴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은 1989년 초연 후 22년째, ‘어머니’는 15년째 롱런 중이다.

사계절 가운데 특히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누구나 부모를 생각하지만 춘천의 여류시인 심순덕씨(50)는 모친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으로 열병을 앓는다. 그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란 시로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략)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과 헌신이 유별난 이 땅의 어머니상을 노래한 이 시는 2000년 《좋은생각》 100호 기념 100인 시집에 수록된 후 널리 알려졌다. 2003년 《한국문인》지를 통해 등단한 심씨는 2004년 강원도 문인협회가 선정한「어머니 대표시인」이 됐으며 2007년에는 춘천문학상을 받았다. 초중고와 대검찰청 등 정부기관, 대기업 등에서는 이 시를 교육 및 훈화자료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심씨는 방송국, 시낭송회, 문학동호인 모임 등에 자주 초대받지만 연말과 어버이 날인 5월 8일 전후로 특히 분주하다. 어머니 사후에 쓴 참회록 같은 시로 유명해졌고, 사람들에게 그 시를 들려줌으로써 자신도 뒤늦은 효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평창군 횡계 출신인 심씨는 9남매 중 막내딸로 부모사랑을 극진히 받으며 성장했다. 머슴까지 둔 부농이었지만 심씨의 어머니는 하루종일 논과 밭농사에 매달리느라 손톱이 자랄 틈이 없는 분이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그는 인생에서 하느님과 엄마와 시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정도로 1990년 지병으로 별세한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최근 춘천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시커먼 손톱과 쩍쩍 갈라진 발뒤꿈치, 부뚜막 찬밥점심을 당연시하던 시절이 부끄럽습니다.”며 “한밤중에 오도카니 앉아 울음을 삼키던 엄마의 그 한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듯하네요.”라고 말했다.

심씨는 고교 음악교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랩퍼가 된 아들(25), 대학생 딸(22)을 두고 있으며 춘천시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선물의집 로제」를 운영하면서 작품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자신의 못다한 효(孝)를 시로 승화시켜 세상에 고백한 심시인의 뜻이 어버이 달에 많은 이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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