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이 들어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탄탄대로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길에서 인생 2막을 보람되게 열어가는 이들도 있다. 해외 한인선교사와 동포들을 위한 선교교육전문 위성방송 CGNTV 조정민 대표(59)가 후자에 속한다.

     CGNTV 조정민 대표의 거듭난 삶
     방송인 25년 접고 54세에 신학공부    
     목사된 뒤 세계적 미디어선교 앞장
     권부의 수장보다 교회경비원이 소망

조씨는 25년간 방송인으로 이름을 날리며 정치가를 꿈꾸던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78년 MBC에 방송기자로 입사한 그는 워싱턴 특파원과 뉴스데스크 앵커, iMBC사장 등을 지내면서 정치권의 러브 콜도 수없이 받았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정동영 의원과는 입사동기이다. 꿈을 향해 달리는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집안에서도 그야말로 왕이었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조씨는 기독교 모태신앙인 아내의 교회출석조차 핍박했다. 사회부기자생활 6년을 포함해서 13년 동안 새벽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에 귀가하는 일 중독자였다. 아내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와 잠든 남편의 발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했다.

◇유명 방송인에서 목회자가 된 조정민 CGNTV 대표가 자신의 행복한 인생 2막을 들려주고 있다.

1997년 어느 날 새벽 조씨는 매일 다니는 골프연습장에 갔다. 그날따라 문이 닫혀있어 담장 건너에 있는 온누리교회를 찾았다. 아내의 새벽기도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소란스런 통성기도와 알아듣지 못할 방언을 하는 교인들을 보고 그는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이라고 단정했다. 일주일동안 취재해서 고발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혼자 결심하고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를 가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4일째 설교와 찬양을 듣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리자 깜짝 놀랐다. 그렇게 해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좋아하던 골프도 끊고 1년간 새벽기도를 다녀와 출근하면서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5년동안 계속했다.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성경책을 보는 조씨를 대하는 선후배와 동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부인과 이혼해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루머도 돌았다. 2001년 iMBC 사장이 됐다. 2년 만에 회사경영상태를 흑자로 돌려놓고 신학공부에 전념키 위해 사표를 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가 반대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신학을 공부해서 그 나이에 목사가 되고 싶으냐? 당신 말고도 훌륭한 목회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냥 지금처럼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요지였다. 그

래도 굽히지 않고 아내를 설득, 2003년 8월 미국 보스톤으로 갔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고든콘웰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보스톤 온누리교회 개척에도 앞장섰다.

신학공부와 목회실습을 함께 한 4년이었다. 그동안 건강을 돌볼 틈 없어 심신이 허약해진 조씨는 심장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안면마비의 고통도 잇달아 겪어야 했다.

그는 여러차례 간증을 통해 “청와대의 주인보다 교회의 수위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신학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2007년 5월 귀국해서 온누리교회의 선교방송 CGNTV 대표를 맡았고 10월에는 목사안수를 받았다.

2000년 10월 인터넷방송국으로 출발한 CGNTV는 2005년 3월 위성방송으로 전환, 국내외에서 172만 여 가구가 시청하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중국 중남미 태국 등 174개국에 선교, 교육, 문화 등 분야별 프로그램을 24시간 방영하고 있다.

미국 일본 대만에는 방송국도 설립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태국어 등으로 방송중이며 아랍어와 불어방송을 위한 기반도 구축했다. 조씨는 조엘 오스틴의《긍정의 힘》을 펴낸 기독교출판사 두란노서원 대표도 겸하고 있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명방송인으로 대부분 Bad News(궂은 소식)를 전하다가 3년전부터 목회활동과 미디어선교를 통해 Good News(좋은 소식)만을 국내외에 알리는 메신저가 된 조씨. 그의 삶이 행복해 보인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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