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순수한 거리응원전까지도 별도 비용 요구

“무슨 권한인지”…  정부, 지금이라도 명확히 해줘야

최근 국내에선 건설사 2차 구조조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밖에서는 동유럽 발 금융위기의 외풍까지 몰아치면서 국내 경제는 위태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요즘 국민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다.

사실 월드컵은 축구만 하는 단일 스포츠 대회지만 경기 승패에 따라 전쟁까지 일어날 만큼 인기를 구가하는 월드 이벤트다. 우리나라도 월드컵이 열리는 때면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하나가 돼 대표팀을 응원한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때 자생적으로 시작된 시민들의 거리응원전은 대한민국 만의 ‘독특한 단체 응원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 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 나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대~한민국’을 외친다.

필자도 이번 월드컵에서 시민 거리응원전의 놀라운 경험을 몸소 체험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일보가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표팀과 아르헨티나 전이 열리는 17일 서울 여의도 너른들판에서 시민 응원전을 개최했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사 입장에서 시민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풀 마당을 제공하고, 한국일보의 위상도 알린다는 의도에서 기획한 행사였다.

특히 이 거리응원전에는 국민의 하나됨을 위해서 2010인분 비빔밥 퍼포먼스를 열었다. 행사에는 다문화가족을 비롯해 장애인, 꿈나무 어린이, 정ㆍ재계 인사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해 하나되는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처음 행사를 준비할 때 ‘과연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거리응원전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올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17일 여의도 너른 들판에 무려 10만명이 넘는 구름 관중이 몰려 필자는 물론이고 행사를 준비해온 스텝과 경찰까지 모두 놀랐다.

경기 시작 5시간 전부터 친구, 가족, 연인의 손을 잡고 몰려오기 시작한 시민들은 비록 대표팀이 아르헨티나에 대패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경기 중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지만 10만여 관중 중에 단 한 명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서 노인, 여성, 어린이, 붉은악마에 이르기까지 목이 터져라 대표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하나됨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성숙한 시민 거리응원전과 달리 일각에서 이런 순수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런 시민의 자발적인 응원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 곳이 바로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다. FIFA는 월드컵 공식 후원사나 파트너, 방송 중계권 등의 명목으로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챙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현대ㆍ기아차가 월드컵 공식 후원사 타이틀을 따기 위해 1000억원이 넘는 거액을 FIFA에 제공했다. 또 SBS로부터도 방송 중계권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FIFA의 독점권 남용이 우리 시민들의 거리응원전까지 방해를 놓는다는 것이다. 필자도 한국일보 거리응원전을 기획하면서 이 독점권 문제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했다.

우선 거리응원전을 하려면 현대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거리에서 경기를 중계하려면 SBS에 중계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또 거리응원전에 참가하는 응원단의 머릿수에 따라 FIFA에 별도의 비용을 내야 한다.

이런 연유로 ‘시민들을 위한 응원 마당을 만든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월드컵 거리응원전을 개최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시민들의 순수한 거리응원전이 결국에는 FIFA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 우리의 비용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가 여는 시민 거리응원전에 대해 FIFA가 무슨 권한으로 돈을 요구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자칫 이런 상업화로 소중한 우리의 거리응원 문화가 위축될까 걱정된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이 부분은 명확히 해줘야 한다. /송영웅 한국일보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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