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은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로 명소가 유난히 많다. 이 가운데 서면은 춘천의 관문으로 삼악산(654m)이 병풍을 둘러주고 앞으로는 북한강이 흘러 자연경관이 수려한 농촌마을이다. 특히 서면은 ‘박사마을’로 유명하다. 금산리, 신매리 등 10개 리에 가구 수는 1600여 세대, 인구는 4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면에서만 박사 122명(명예박사 중복3명 포함)을 배출, 13가구당 1명꼴로 박사가 나온 셈이다.

4부자(父子) 박사 집안도 있고 3남매 박사도 있다. 박사 말고도 교육감, 교육장 등 초·중·고 교장급이상 교육자 95명, 5급 이상 공직자 80여명이 이 마을 출신이다. 박사1호는 1963년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송병덕씨(78)로 현재 LA에서 내과병원을 운영중이다.

2호는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1968년 통계학 박사가 된 박종진 전 샌디에이고대 교수(74). 3호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승수씨(74)로 1968년 영국 요오크대에서 한국인 최초의 경제학박사가 됐다. 이들은 모두 금산리 출신으로 금의환향해 유명해졌다. 특히 한씨의 부인 홍소자씨는 신매리출신으로 미국 보스톤대 교육학박사, 아들 상준씨는 MIT 공학박사, 장조카 상일씨는 이학박사로 화제가 됐다.


     춘천 서면 13가구당 1명 꼴로 박사
     한승수 전 총리 부부와 아들, 조카도
     동네마다 4부자, 3남매, 부부박사 등
     박사모 쓴 선양탑에 영광의 이름 새겨

◇박사마을 관리위원인 최선화씨가 선양탑앞에서 서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면에서 박사는 자랑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부자박사, 부녀박사, 부부박사, 형제박사, 모자박사, 자매박사 등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이 마을 20호 박사인 송병두씨(51)는 미국 브랜다이스대 화학박사로 동생과 누이도 이학박사와 간호학박사가 됐다. 특히 송 박사는 강원대 부설 스크립스 코리아 항체연구소(SKAI) 소장으로 항체신약분야의 전문가이다.

서면사람들은 1967년 의암댐이 준공되기 전까지는 춘천시내로 가려면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했다. 주민들은 산나물과 채소, 감자 등을 광주리에 이고 춘천에 나가 팔았다. 지금도 소양로에는 ‘번개시장’이라고 불리던 그 시장이 있다. 동틀 무렵 새벽장이 섰다가 아침 8시경이면 금방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면 박사마을 관리위원인 최선화씨(75)는 “서면에 박사가 많이 나온 것은 고생하면서도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들을 보고 자란 자녀들의 향학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당시 춘천에서는 ‘고무신이나 장화에 진흙이 잔뜩 묻었거나 발등이 시커먼 사람은 서면출신’이라는 말이 있었다”면서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뒤늦게 박사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배를 타려면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했고, 해가 지면 강 건너 춘천의 야경을 보면서 도시를 동경했을 것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서면사람들은 1999년 12월 ‘박사마을 선양탑’을 건립했다. 4m 높이의 선양탑은 책을 상징하는 돌 구조물 위에 박사모 조각을 올려놓았다. 탑 옆과 뒤편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순서대로 성명과 연도, 학위수여대학을 새겨놓았다. 또 2001년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이던 한승수 박사가 유엔총회 의장에 취임한 날을 기념해 매년 9월 12일을 ‘서면인의 날’로 정해 고향사랑 행사를 하고 있다.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오는 선양탑에는 아래와 같은 요지의 글이 새겨져 있다.

박사마을 서면! 춘천에서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 북한강과 고산준령으로 교통이 불편하기만 했던 곳, 어머니들은 산나물과 채소를 광주리에 이고 내다 파느라 하루해가 짧았고 아버지들은 원예작물 재배에 힘써 뒷바라지하기를 낙으로 삼으니 앞집 뒷집, 이 동네 저 마을에서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 전통은 계속 이어 지고 있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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